우리에겐 여가지만 그들에겐 생존이다

입력
2020.09.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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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장기화된 요즘, 저는 슬프게도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들 일 없어 난린데, 바쁜 게 왜 슬프냐고요? 제 직업은 상담가이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이들이 수없이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는, 이런 바쁨을 어찌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어제도 꼬박 새벽 4시까지 온라인 상담을 하고 있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였습니다.

“선생님 저 민재(가명)예요. 기억하세요? 요즘… 면허증 따고 있어요. 라이더 해보려고요.”

민재. 그는 지방에서 음향 기사를 하던 청년이었습니다. 지난 3월, 서울역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서울에 웬일?”이라는 제 질문에 그는 "우리 동네 일자리가 모조리 사라져서, 서울에 오면 그나마 좀 있을까 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완전히 직업을 포기했다며 상담 글을 남겼습니다. 3월경에는 ‘불안’했지만, 9월이 된 이제는 ‘포기’했다면서요.

그의 글을 읽으며,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게 상담을 받았던 인디 뮤지션, 거리 공연가, 무대 설치 기사, 프리랜서 MC… 그들 역시 다르지 않은 상황일 테니까요. 이들의 상담을 살펴보면 코로나 초기에는 ‘어떻게 이 상황을 버티지?’를 고민했습니다. 즉, 그들의 본업을 포기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반기까지 모든 ‘무대’가 사라졌다는 통보를 받고, 내년까지도 담보할 수 없게 된 지금은 이미 직업 이탈 릴레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이런 분도 계실 겁니다. “요식업도, 의류업도, 교육업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하지만 공연 및 축제 분야는 가장 먼저 확실하게 이미 붕괴가 진행되었습니다. 경제적 지지선이 약한 청년 세대가 다수 종사하는 업종인 만큼, 이미 종사자는 떠나고 업계는 통째로 소멸되기 시작한 거지요. 그 재난의 현장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 민재는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선생님. 우리 업계는 ‘여가’라고 긴급 지원도 마땅치가 않아요. 근데요. 이 업에 종사하는 우리에겐 ‘생존’이잖아요?”



이 현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선례가 될 만한 시도가 경기 시흥시에서 시작되어, 반가웠습니다. 오랫동안 개최해 오던 지역 축제인 시흥 갯골 축제를 취소하지 않고 온라인 비대면 축제로 변경, 개막하게 된 것이지요. 코로나 시국에 포럼도 아닌 축제를 꼭 해야겠냐는 비판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코로나 시국이기 때문에 이런 ‘전환의 모색’은 더욱 필요합니다. 함께 모이는 시간을 송두리째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업종이 ‘여가’의 카테고리에 있다는 이유로 생존의 안전망이 완전히 무너진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작은 숨통이 되어주기 때문이지요. 알바로 방향을 틀었던 음향기술자, 공연예술가, 무대 제작 전문가들이 잠시나마 제 자리로 돌아올 기회를 얻으며, 그래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 작은 지지대가 되어 주었으니까요.

저는 오늘부터 이 축제를 최대한 신나게, 또 즐겁게 즐겨볼 생각입니다. 부디 이 비대면 축제가 성황리에 종료되기를 바라봅니다. 선례가 되어 더욱 많은 지역에서 행사 취소가 아닌, 비대면 전환 시행을 해보길 기대합니다. 여러분도 함께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함께 즐길수록, 그들에겐 ‘생존’을 이어갈 큰 힘이 되니까요.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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