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마음의 빚

입력
2020.09.10 18:00
26면

제2 조국 사태로 가는 추미애 의혹
문 대통령 대처에 도덕성 회복 달려
검찰개혁 바로잡아 전화위복 되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2의 조국’이 되는 일은 임계점을 넘었다. 아들의 군 휴가에 압력을 행사했는지가 논란이었는데, 자대 배치와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 선발 청탁 의혹까지 추가됐다. 그래도 희망은 “하도 청탁을 많이 해” 제비뽑기를 했다는 군이다. 추 장관의 문제는 “소설 쓰시네”라는 비아냥만은 아니다. “아들 휴가에 일절 관여한 적 없다”던 답변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건 중한 일이다. 청탁을 폭로한 예비역 대령과 언론사를 고발해 입막음을 시도하는 것도 공인으로서 부적절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부모자식 관계를 단절하라는 것이냐”(장경태) “카투사 자체가 편한 보직이라 (청탁이) 의미가 없다”(우상호) “김치찌개 시킨 것을 빨리 달라고 하면 청탁이냐”(정청래) 등 논리 없는 감싸기로 도덕성의 잣대를 흐리고 적들을 만든다. 초엘리트의 특권 주고받기가 ‘너무하다 vs 저들은 더하다’로 진영싸움도 불 붙었다. 조국 사태를 뒤따르는 추미애 사태는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대통령의 결단, 추 장관 손절을 거론한다. 결단의 때는 지금은 아닐 수 있다. 보좌관의 군부대 통화, 병가 근거 서류 실종, 추 장관 부부가 민원을 했다는 국방부 문서 등 미심쩍은 정황에도 불구하고 적법한 민원절차를 거친 것인지, 당 대표 권한을 남용해 압력을 행사한 것인지가 아직 명확치 않다. 문제는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검찰의 신뢰성이 이미 오염된 점이다. 검찰은 8개월이나 시간을 끌고 보좌관 통화 사실을 조서에서 누락하는 등 불신을 자초했다. 추 장관 부임 후 정권 수사 검사들을 죄다 좌천시킨 지금의 검찰은 특수부 검사 수십 명을 투입해 조 전 장관을 탈탈 털던 과거의 검찰이 아니다. “공평무사한 수사로 진실을 밝히면 될 일”(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인 것은 맞는데, 이조차 대통령이 나서야만 가능할 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조국 사태 때와 다르기를 바란다. 당시 문 대통령이 왜 그토록 조 전 장관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 전 장관 딸이 누린 ‘아빠 찬스’와 사모펀드 투자는 위법성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결격 사유다. 국민 분열이란 대가는 낭비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기세가 꺾일 것을 우려했을 법하나 꼭 조국이어야 검찰개혁이 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문제는 대통령에게 있었다. 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며 국민 아닌 조 전 장관에게 미안함을 표한 순간 조 전 장관은 희생자가 되었고, 그에 대한 비판은 부당한 공격이 되었으며, “불법은 아니다”는 그의 궤변은 정당화했다. 불공정과 내로남불 논란이 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중도층은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졌다.

추 장관이 아들을 위해 당 대표 직책을 이용했다는 실체가 확인될 때 문 대통령은 ‘마음의 빚’이나 ‘부모의 마음’을 운운하는 일 없이 그를 경질하고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의 청탁은 부당한 것이며 허용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쓰러진 윤리와 공정의 깃발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민주당 스스로 도덕성을 회복할 기회다. 더불어 검찰개혁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기를 바란다. 문 대통령의 의지와 제도 개선 성과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은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과 무리한 인사로 빛이 바래고 길을 잃었다. ‘민주적 통제’는 검찰 길들이기와 구분이 안 되고 검찰 권한 분산은 수사력 저하를 막지 못한다. 검찰개혁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을 보호하며 악의 뿌리를 뽑는 검찰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개혁의 초심을 다시 새길 때 제2 조국 사태는 그의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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