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횡령·사기 등 혐의로 정지영(74) 영화감독을 고발한 공익제보자 측이 고발장 제출 하루 전날 정 감독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당했다고 추가로 폭로했다. 또 정 감독 측이 스태프 인건비 명목으로 나온 영화진흥위원회의 보조금을 횡령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통장 내용도 공개했다.
공익제보자인 한현근(58) 작가는 28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정 감독이 찍은 영화와 그의 삶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 버렸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정 감독은 영화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1985' 등 부조리를 파헤치는 영화를 다수 만든 '사회고발 영화의 거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 감독과 십년 넘게 여러 영화를 함께 작업한 한 작가 측은 최근 검찰에 정 감독과 영화제작사 아우라픽처스를 업무상 횡령, 사기, 보조금 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정 감독 측이 스태프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지급된 영진위의 보조금을 스태프로부터 되돌려받는 식으로 횡령했다는 것이 한 작가 측 주장이다.
한 작가는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기 하루 전날 정 감독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성 메시지를 받았다며 정 감독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한 작가에 따르면 23일 오후 11시 18분쯤 정 감독은 한 작가에게 "내게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모아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더 화가 나서 무슨 일 벌이기 전에 이성을 찾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한 작가가 "감독님 협박하십니까"라고 묻자, 정 감독은 "한 작가 부탁한다. 정신 좀 차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한 작가는 고발 사건과 관련해 2011년 당시 정 감독에게 "보조금을 이렇게 쓰면 문제가 된다"며 우려를 제기했지만, "정 감독이 '영화를 제작할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정 감독이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불법 행위를 강행했다는 것이 한 작가의 주장이다.
이번 사태는 2011년 영화 '부러진 화살' 제작 당시 정 감독과 제작사 측이 '스태프 인건비' 명목으로 나온 영진위 보조금을 스태프들에게 다시 거둬갔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촉발됐다. 제작사 아우라픽처스는 정 감독 아들이 대표로 있는 곳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다. 한 작가는 "당시 제작사는 영진위에서 받은 인건비 보조금 4,950만원을 스태프들 통장으로 입금한 뒤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통장 내용도 공개했다. 거래 내역을 보면 제작사로부터 6차례에 걸쳐 450만원을 받은 뒤 다시 3회에 걸쳐 전부 되돌려준 것으로 돼 있다.
최근 정 감독 아들인 정 대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오해가 있었다"며 영화 흥행 뒤 제작사가 수익의 60%를 배우와 스태프에게 나눠줬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 작가는 "영화 수익 분배와 별개로 보조금을 빼돌린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스태프도 있다"고 반박했다.
한 작가는 '크레디트 도용' 문제도 거론했다. '부러진 화살' 각본에 정 감독 이름도 올라와 있는데, 이는 정 감독의 강요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한 작가는 “평소에도 정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 나는 방에서 각본을 쓰고, 정 감독은 영어학원을 다녔다”며 “그럼에도 정 감독은 자신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한 작가가 제기한 보조금 의혹에 대해 정 대표는 “현재 검찰 등 조사를 준비 중인 관계로 답변해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크레디트 도용 의혹에 대해서는 “일방적 주장일뿐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