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후유증 대물림 조사…많은 이들 참여가 필수”

입력
2020.08.2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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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인 약 7만명이 피폭됐다. 그 중 4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2만3,000명이 한국에 귀국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이는 2,2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들 1세대를 부모로 둔 2세대로 구성된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에는 2,200여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1세대와 달리 피폭 후세대는 의료비 등 정부 지원의 밖에 있다.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일본 연구진은 피폭된 부모가 낳은 자녀에게서 심근경색, 고지혈증, 암 발생 증가 등 질환 대물림이 없었다고 결론냈다. 이에 대해 ‘피폭 1ㆍ2ㆍ3세대 코호트 구축 및 유전체 분석 연구’에 나선 한양대 예방의학교실 박보영 교수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생존자를 대상으로 검사가 이뤄졌다는 게 일본 연구의 한계”라며 “사망한 사람들까지 포함한 가계도 기반 조사를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가계도 조사와 유전체(유전자 전체) 분석을 동시에 진행해 피폭된 부모로부터 질병 유전율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볼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선 피폭 1~3세대 중 연구 참여 의사를 밝힌 이들의 가계도를 그릴 계획이다. “이미 사망한 가족들의 질병 정보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질병 유전율을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폭된 부모가 낳은 자녀에게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얼마나 나타났는지도 따져본다. 검사 대상은 1세대와 후세대가 모두 생존해 있는 가구다. 피폭된 부모와 자녀, 한 명만 피폭된 부모와 자녀, 피폭된 부모 중 한 명과 그의 자녀 둘 등을 대상으로 돌연변이가 후세대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녀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받았기 때문에 부모에게 없는 유전자가 생겼다면 새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 의뢰로 같은 대학교 생명과학과 남진우 교수와 함께 진행하기로 한 이 연구 결과는 2024년 말에 나올 예정이다.

당장 넘어야 할 산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느냐다. 박 교수는 “피폭 후세대라는 사실 자체를 감추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 모집단 모집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정확한 연구결과를 위해선 피폭 1세대와 후세대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원폭 피해와 질병 유전율 간의 상관관계를 보려면 가계 유전력이나 개인 생활습관 등 제외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당초 피폭 1세대와 후세대 총 2,7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재는 약 2,0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박 교수는 보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는 이달 중 피폭 1세대와 2세대, 총 4,400여명에게 참여 동의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피폭자와 그 자녀들에게 난치성 질환 유병률이 높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결과가 뒷받침하고 있다”며 “부모ㆍ자식 간 질병의 연결고리에 주목해 실제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되는지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피폭 후유증 대물림 문제는 피폭된 어머니를 둔 희귀난치병 환자 고(故) 김형률씨가 2002년 3월 피폭 2세대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불거졌다. 그는 34살이던 2005년 5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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