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내세운 김대지 ‘부동산 청문회’ 아이러니

입력
2020.08.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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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부동산 청문회’나 다름 없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가 뜨거운 점을 감안한 청와대는 김 후보자가 '무주택자'임을 앞세워 국세청장에 지명했다. 김 후보자의 부동산 문제가 인사청문회를 달군 것은 인사가 청와대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미래통합당은 김 후보자를 향해 ‘자녀 교육과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수 차례 위장전입을 한 것 아니냐’고 집중 추궁했다. 김 후보자가 처제 명의로 서울 강남 아파트를 매입해 수억원대 시세 차익을 거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적 문제는 없다”며 김 후보자를 적극 두둔했다. 하지만 여당에서조차 김 후보자의 ‘부동산 이력’이 “국민 정서법에 못 미친다”는 자성론이 나오기도 했다.


'자녀 교육용' 위장전입 인정... "생각 짧았다"

청문회는 위장전입 의혹에 대한 김 후보자의 사과로 시작됐다. 김 후보자는 2004년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전입했고, 이듬해 자녀는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김 후보자는 캐나다 연수를 마치고 2009년 귀국하면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자녀와 배우자 주소지는 은마아파트에 남겨뒀다. “자녀가 비(非) 8학군으로 전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위장전입”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학교 적응을 걱정하는 딸을 보니 부모 입장에서 다니던 학교에 계속 다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며 교육목적의 위장전입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짧았고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처제의 강남 아파트 '갭투자'... 차명이냐, 아니냐

통합당은 ‘강남 아파트 차명매입’ 의혹을 집중 추궁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김 후보자 처제는 2010년 12월 34세였는데, 강남구 역삼동 경남아파트를 5억500만원에 매수했다. 김 후보자는 해당 아파트에 전세를 얻었다. 가족 간 돈을 주고 받으며 ‘갭 투자’(전세를 끼고 매매)를 한 셈. 김 후보자의 처제는 지난해 5월 9억7,800만원에 아파트를 매도해 4억7,000만원을 남겼다. 김태흠 통합당 의원은 “처제가 1억2,000만원을 대고 김 후보자가 2억3,000만원 내고 집을 사면서 명의를 처제로 한 것은 차명 거래 아니냐”고 했다.

김 후보자는 “처제가 집을 소유하려는 의사가 강했다”며 “전세보증금은 처제에게 되돌려 받았고, (아파트 매매차익은) 처제가 예금 등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 후보자가 부당 이익을 보지 않았다는 취지다. 통합당은 아파트 매입ㆍ매각 당시 거래내역 제출을 요구했지만, 김 후보자는 “처제의 프라이버시”라며 맞서 최종 팩트 체크는 하지 못했다.


처제 집에 자기 어머니까지? "서민들은 그렇게 살아"

김 후보자가 2013년 강남구 자곡동 LH 임대아파트 청약 과정에서 청약 가점을 받기 위해 노모를 위장전입 시켰다는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에 거주하던 모친은 2010년 8월 김 후보자의 잠실동 아파트로 주소를 옮겼다. 이듬해 1월에는 김 후보자 가족과 함께 역삼동 처제 아파트로 주소 이전을 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방 3개짜리 아파트에 5명(김 후보자 직계가족 3명ㆍ모친ㆍ처제)이 사는 게 가능하냐”(유경준 의원), “모친을 부양 가족에 포함하면 주택 청약에서 혜택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서일준 의원)고 따졌다.

김 후보자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그렇게 산다"고 했다. 또 "당시 청약신청서를 보면 저와 아내, 딸 세 명의 이름만 올라 있다”며 청약용 위장전입 의혹에 선을 그었다. 그러자 유경준 의원은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딸이 대학에 갔다고 근처에 방 3개 아파트 전세를 얻어주는 게 서민이냐"고 재반박하기도 했다.


5년 후 강남 아파트 분양되는데, 무주택자?

통합당은 청와대가 김 후보자를 무주택자로 소개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자곡동 LH 임대아파트는 나중에 소유권 취득이 가능한 분납 임대주택이기 때문이다. 서병수 의원은 “해당 아파트가 5년 뒤 분양 전환이 되면 약 10억원의 시세 차익이 예상되는 만큼, 김 후보자는 그야말로 똘똘한 강남 한 채를 가진 1주택자”라고 했다. 류성걸 의원은 “자곡동 아파트 실거주 기간이 1년 몇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며 "이 아파트에 사셔야 할 분들의 기회를 빼앗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이번에도 부인했다. 그는 “배우자가 자곡동 아파트에 머물렀다"며 "딸이 거주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아파트(전세)는 배우자가 주말에 가는 정도였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법적 문제 없어" 엄호

민주당 의원들은 김 후보자 지키기에 나섰다. 박홍근 의원은 “후보자가 나중에 처제로부터 전세금을 돌려 받았고, 차익은 처제가 갖고 있다”며 차명 거래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성호 의원은 "28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신고한 자산이 5억원 정도"라며 "임대주택이 분양 전환돼도 10억원 정도일텐데, 이게 큰 하자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기동민 의원도 “김 후보자가 제도를 잘 알고 활용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법적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기 의원은 “법과 제도 내에선 문제가 없지만 국민 정서법과 일상적 기준에는 못 미칠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박준석 기자
이혜미 기자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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