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은 과연 누구인가

입력
2020.08.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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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마뱀의 날( 8.14)


'냉혈(冷血)인간'이란 "인정이 없고 냉정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흔히 '피도 눈물도 없는' 같은 동의어와 함께 쓰인다. 그러니까 냉혈의 반대말은 '온혈'이 아니라 '36.5도'라 할 수 있다. 사람의 평균체온을 가리키는 저 숫자는 '인간적인' '상식적인' 쯤의 상징어다.

'냉혈동물'은 린네 분류법상 파충류다. 악어 도마뱀 뱀 거북 등 '냉혈(cold-blooded) 물질대사'를 하는 악어 도마뱀 뱀 거북이 그 범주에 든다. 그러니까 파충류는, 인류의 상징체계 안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짐승 같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짐승같은 존재다. 한국에도 방영된 미국 NBC의 1983년 미니시리즈 'V'의 사악한 외계인이 파충류였다.

생물학에선 '냉혈' 대신 '변온(變溫)'이란 말을 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포유류나 조류와 달리 파충류는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기 때문이다. 항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반면, 변온동물은 환경에 체온을 맡기기 때문에 같은 몸집의 포유동물보다 덜 먹어도 잘 버틴다. 그들은 먹이의 영양소(열량)뿐 아니라 태양광 같은 자연에너지를 생존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포유류보다 자원을 덜 소비하도록 진화한 존재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도 파충류의 반대편 극단에는 기후 위기의 파멸적 사태를 야기한 인류가 있다. 파충류 입장에서 보자면 '냉혈 인간'의 의미, '36.5도'의 상징은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다수가 혐오하고 기피하는 파충류를 '애완(愛玩)'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국제자연보호연맹(IUCN)도 세계야생생물기금(WWF)도 표나게 주목하지 않는 파충류를 위해, 그들의 서식권 보호 및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온갖 일을 벌인다. 누가 언제 지정한 건지 알려진 바 없지만, 오늘은 '세계 도마뱀의 날(World Lizard Day)'이다. 지구에는 5,600종이 넘는 도마뱀이 있고 다수는 멸종 위기종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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