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증인 출석한 첫 현직 대법관... "재판거래 아니었다"

입력
2020.08.11 16:20
이동원 대법관, 임종헌 전 차장 재판 증인 출석

현직 대법관이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2016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지위 확인과 관련한 행정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이동원(57ㆍ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이 그 주인공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대법관의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 사건 재판에서도 현직 대법관의 증인 출석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61ㆍ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선 이 대법관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하는 식으로 재판에 개입했는지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이 대법관이 2016년 3월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입장이 정리된 10쪽짜리 문건을 건네받은 사실을 파악했다. 당시는 그가 서울고법으로 전보돼 해당 소송의 항소심 재판을 맡은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시점으로, 문건을 전달한 당사자로는 이민걸(59ㆍ17기)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지목됐다. 이 전 실장은 이 대법관의 연수원 동기로, 두 사람은 매우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날 법정에서 이 대법관은 “선의로 참고 자료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사실 관계 자체는 시인했다. ‘정당 해산으로 인한 지역구 의원의 직위 상실’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고심에 빠져 있던 때라고도 했다. 이 대법관은 “헌법교과서도, 관련 논문도 다 읽었지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련 언급이 있다면 논리적 근거로 삼을 수 있겠다 싶어서 (문건을) 읽었다”며 “안 읽었다면 더 떳떳할 텐데 그걸 읽어서 면목이 없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법관은 “(당시 문건을 받은 건) 재판 거래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문제의 행정처 문건에는 그가 참고하려던 내용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헌법과 행정소송법을 토대로 평소 생각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2018년 2월 제주지법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사건을 ‘자랑스런 판결’로 기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2018년 7월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이와 관련해 “법과 양심에 따라 국민 앞에 부끄럼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이 대법관은 특히 “행정처가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소신을 밝혔다. 평소에도 제3자가 특정 재판부에 접근해 오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는 것이다. 해당 소송이 진행될 무렵 이규진(58ㆍ18기)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통진당 재판이 있는데 고생 좀 하시겠네요”라고 말했던 걸 언급하면서 “그런 맥락에서 기분이 나빴다”고도 했다. 이 대법관은 “(만약) 이 전 기조실장이 ‘윗분들의 관심 사안’이라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 화를 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 2시간의 증인신문이 끝나자 이 대법관은 재판부에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재판부가 소회를 묻자 그는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증인석에 서서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에서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한다”면서 말을 맺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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