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 만에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야. 우리 집 밭이 아예 사라져 버렸어."
3일 오후 충북 충주시 엄정면 탄방마을에서 만난 주민 나옥희(80)씨는 갈퀴로 마구 할퀴어놓은 듯 엉망이 된 밭을 내다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쏟아진 폭우로 옥수수와 감자는 급류에 휩쓸려 온데간데 없이 사려졌고, 밭과 자택 인근에는 진흙으로 범벅이 된 쓰레기들만 남았다. 마을 주민 가운데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마을 전체가 거의 패닉에 빠졌다. 나씨는 "이웃들은 많이 떠났는데 어디서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 몰라 오도가도 못하고 남편과 함께 집에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연일 집중 호우가 이어진 충북 지역 곳곳에 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사망ㆍ실종자가 다수 발생한 충주시 강변 마을에서는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어 주민 불안도 커지고 있다. 강변 지대를 지탱하던 나무와 수풀들은 모두 꺾였고, 논밭에는 강물과의 경계를 알아볼 수도 없게 물이 들어 찼다. 이틀째 호우가 계속되면서 가구가 밀집한 지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빗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좁은 도로를 뛰어 넘어 다녀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약 65 가구가 모여 살던 탄방마을에는 주민들이 인근 지역으로 대피하면서 인적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텅 빈 상태다. 김윤종 탄방마을 이장은 "어제에 비해 빗줄기가 잦아든 틈을 타 주민들 상당수가 친척집 등으로 각자 대피했다"고 설명했다.
쑥대밭이 된 마을에선 거동이 힘든 80대 이상 노인들만 고립된 채 남아 불안에 떨고 있다. 갑작스런 산사태와 급류 등으로 자택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위험한 상황이지만, 거리와 다리 등 시설이 마비돼 선뜻 집을 나설 수도 없는 탓이다. 탄방마을에 거주하는 김모(81)씨는 "어제 도랑을 타다 못해 넘쳐 흐른 물이 집 마당까지 가득 차 올랐다"며 "길이 모두 망가진 데다 갈 데도 없고 무서워서 홀로 대문 앞에 임시 방파제를 쌓아 올려 뒀다"고 말했다.
전날 소방대원 1명이 실종됐던 충주시 산척면 서대마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마을 뒤의 산들은 토사가 무너져 군데군데 시뻘건 속살을 드러냈다. 무너진 돌벽 틈새로는 빗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폭우로 전봇대가 꺾여 쓰러지는 바람에 마을의 전기도 모두 끊겼다. 마을 주민 53명 중 절반이 넘는 20여명은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서대마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어제 내내 암흑 속에 있다가 오늘 낮에야 막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마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마을 복구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충북도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이 지역 8개면 3,400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끊겼으나, 정상화엔 앞으로 일주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육춘식 서대마을 이장은 "이번주 내내 집중 호우가 계속 된다고 하는데 큰 일"이라며 "당장 무너져 내린 뒷산과 마을 앞 도로를 언제쯤 복구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집중호우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충북지역에서는 실종자 수색이 재개됐다. 지난 1일부터 내린 폭우로 4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된 가운데 소방본부는 드론을 비롯한 수색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 수색 작업을 벌였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집중호우 대처상황 대책 영상 회의에서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지방하천 정비를 위한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한편 폭우로 인한 피해는 중부권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시간당 80mm의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도로 곳곳이 통제됐으며, 가평에서는 무너져 내린 토사가 펜션을 덮치는 바람에 4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원 영서 지역에는 3일 동안 최고 341㎜의 물폭탄이 쏟아져 곳곳에서 하천 범람과 산사태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