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네이버, 카카오 같은 빅테크(대형 정보통신) 기업이 직접 계좌를 발급하고 이체ㆍ결제 등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업체에게 신용카드 회사처럼 소액의 외상거래를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들이 사실상 은행, 카드사 업무를 일부 차지하는 셈인데, 그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던 기존 금융권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디지털 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이르면 올해 3분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방안에 따르면, 우선 빅테크 기업이 고객 결제계좌를 직접 발급하고, 하나의 금융 플랫폼에서 결제ㆍ이체 등 다양한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가 새로 도입된다.
현재 전자금융업자는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와 연계된 계좌만 개설할 수 있다. 최근 네이버의 금융전문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이 ‘네이버통장’을 만들면서 미래에셋대우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이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종합지급결제사업자로 승인 받으면 굳이 금융사와 협업하지 않아도 급여 이체나 카드대금, 보험료ㆍ공과금 납부 등의 계좌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간편결제 업체는 소액 후불결제 기능을 가질 수 있다. 한도는 최대 30만원인데, 이는 후불결제가 가능한 하이브리드 체크카드와 같은 수준이다. 예를 들어 ○○페이 계좌에 10만원을 충전한 이용자가 40만원의 상품 대금을 결제하려고 할 경우, 30만원은 ○○페이가 대신 내주고 이용자는 신용카드처럼 추후 결제일에 30만원을 지불하면 된다는 의미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사회초년생, 주부 등 금융소외 계층의 디지털금융 접근성과 금융이력 축적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200만원인 선불전자지급수단 1회 충전 한도를 5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전자금융거래법 손질에 나선 것은 2006년 제정 후 14년만이다. 스마트폰 대중화 이전에 만들어진 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금융환경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들이 시장에 대거 뛰어들 경우 금융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이에 금융위는 금융플랫폼 사업자에게도 금융회사 수준의 규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가령 종합지급결제사업자의 경우 △200억원 이상 자기자본과 전산역량 등을 갖추고 △금융사 수준의 신원확인, 자금세탁방지, 보이스피싱 등 규제가 적용된다. 후불결제의 경우 신용카드와 달리 현금서비스, 리볼빙(일부결제금액 이월약정), 할부서비스는 금지하고, 선불충전금의 안정성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 등 외부에 충전금을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또 빅테크 기업이 보유한 이용자의 충전금이 내부자금화되는 것을 막고, 자금세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외부기관을 통한 청산을 의무화했다. 금융사고 발생시 금융사가 1차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등 전자금융업자의 사고 책임도 대폭 강화한다.
이번 조치는 사실 소비자에겐 긍정적이다. 굳이 은행서비스를 통하지 않아도 예금, 대출을 제외한 대부분 금융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고, 소액 후불결제도 급전이 필요할 때 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금융사의 불만과 우려는 상당하다. 이미 네이버가 네이버파이낸셜이란 우회로를 통해 규제는 피하면서 결제ㆍ보험시장에 진출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비등한 상황이다. 여기에 이들이 막대한 데이터와 수천만 고객층을 무기로 시장에 침투할 경우 빅테크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재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금융지주사 회장단 조찬에서도 이런 위기감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건전성 규제도 받지 않는 대금결제업체들이 후불결제 기능을 갖는 것에 불만을 보여온 카드사들도 반발하고 있다. 여신업계 관계자는 “금융업 면허도 없는 업체에 후불 결제 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여신사업 허용을 의미한다”며 “소액 후불결제 액수가 당초 예상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한번 둑이 터지면 흐름을 되돌려놓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