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규모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한 미국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이 미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못하게끔 이를 견제할 최소한의 장치가 확보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법안에도 예외조항은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어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 상원은 23일(현지시간) 국방 예산을 7,405억달러(약 890조4,500억원)로 책정한 국방수권법안을 86 대 14로 가결했다. 앞서 21일 하원도 압도적 표차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의 최대 관심인 주한미군 관련 내용은 상ㆍ하원 공히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현 수준(2만8,500명)의 병력 규모를 줄일 때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최근 미 국방부가 올해 3월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안을 선택지로 제시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로 주한미군 감축설이 다시 불거진 터라 이번 법안 처리는 더 주목을 받았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 카드로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국방수권법 내용에 관심이 커진 것이다.
다만 주한미군 감축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 즉 예외조항의 항목이 상원 법안에선 하나가 줄었다. 하원 통과 법안에는 △미국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동맹국의 안보를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을 경우 △한국ㆍ일본을 포함한 동맹국과 적절히 협의한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 △북한의 위협이 감소한 데 따른 감축 결정임을 입증하는 경우를 전제로 내세웠다. 상원 법안에는 북한 관련 조항이 빠졌다. 상ㆍ하원은 각 원에서 통과한 법률 문안을 일체화하는 공동 문안 조문화 작업을 거쳐 양원에 다시 표결을 부친 후 대통령 서명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예외조항 충족 여부를 떠나 병력 감축의 근거가 법안에 마련된 점, 대통령에 거부권이 있다는 점, 법안 발효 시점이 연말이라는 점 등 감안하면 대선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카드를 얼마든지 재선 전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구나 이날 통과한 법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 거부를 예고한 ‘군사기지 명칭 변경’ 조항도 포함돼 갈등을 증폭시킬 확률이 높다. 최근 반(反)인종차별 시위를 계기로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딴 미군 기지 명칭을 바꾸는 내용이다. 그간 대통령을 호위하던 공화당 의원들까지 초당적 지지를 보내 대선을 앞두고 불협화음이 커진 당정 관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