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에 와서?”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을 고소한 피해자에 대해 SNS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인 듯하다. 이미 2년 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이 알려졌을 때에도 피해자가 왜 처음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신고하지 않고 여러 번 피해를 당한 이후에야 문제제기를 했는지 의문들이 쏟아졌던 것과 겹친다.
“왜 사건 당시에 신고하지 않았는가?” 한때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는 피해자들에게 사법기관이 던지는 전형적인 질문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순간 오히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 의해 난도질당하게 되는 상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로 인해 여성 피해자들이 신고를 결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폭력 피해자의 어려움이 이해되기 전까지 사법기관은 신속하게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무죄의 근거로 활용했다. 1950~1960년대 미국에서 최대한 저항해야 강간이 성립한다는 정조 중심의 강간죄 판단 기준을 적용할 당시에 피해자가 신속하게 신고했는지 여부는 최대한 저항을 증명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2004년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관계를 고려하여 8개월 이후 고소했다는 점이 무죄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기 전까지는 사건 발생 이후 고소하기까지의 기간이 유무죄 판단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다.
아예 낯선 사람에 의해 길거리에서 갑자기 일어난 성폭력 사건이 아닌 이상 성폭력 사건의 신고는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하다못해 친구 관계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신고를 결심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굳이 신고까지 해서 공식적으로 처벌해야겠냐는 비난과 질책, 그로 인해 기존의 관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들, 주변인들에게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위험 등등. 이것이 직장이라면 앞으로 직장에서 부딪힐 어려움까지 고려해야 한다. 신고라는 공식절차를 밟는 순간 문제제기자, 시끄러운 사람으로 여겨져서 상사와 동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업계가 좁다면 직장을 옮긴다고 하더라도 그 평판은 평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해자가 처벌되어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피해자가 오히려 한 사람의 생계를 위협한 무서운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경험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그 직장의 우두머리라면?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공인이라면? 신고를 결정하는 데에 피해자가 고려할 어려움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당수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문제삼지 않고 참고 넘기거나 비공식적으로 주변 지인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정도에 그친다. 성폭력 피해가 2회 이상 반복되어야 상사나 인사담당자에게 상담을 시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지속되거나 점차 가해행위가 심해지는 경우에야 비로소 공식적인 신고를 결심하게 된다. 이 기간은 가해자의 지위가 높을수록,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막대할수록 수개월에서 수십 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형법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 사건이 신고·고소되는 건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업무상 위력추행사건의 경우에는 한 해에 200~300건 정도가 접수되지만 위력간음사건은 그보다 훨씬 적어 한 해 10여건 정도가 접수되는데 그나마 2017년부터 20여건 대로 증가하였다. 이들 사건 중에는 처음 성폭력이 발생한 이후부터 고소까지의 기간이 상당한 경우가 많은데, 2016년 대학총장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소한 교직원의 피해 기간은 20여년이었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 문제로 2013년 이후 위력추행에 대해서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4년간 왜 신고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4년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성폭력이 지속되도록 한 기제가 바로 업무상 위력,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지위와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수많은 업무상 위력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침묵시키는 데에 일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