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판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직 올해가 6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두 번의 보이콧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상반기가 시작된 1월에 들썩이더니 하반기의 첫 달인 7월에 또다시 요동쳤습니다. 1월에는 출판사 문학사상사에, 이달에는 문학동네와 창작과비평사(창비)에 대한 보이콧 사태입니다. 문학사상사는 작가들에게 강제 계약 요구를, 문학동네와 창비는 일반인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젊은 작가와 동네서점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출판사들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반기를 들었는데, 최근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 인용'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야말로 '을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 출간ㆍ유통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출판사에 대항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젊은 작가와 서점들이 왜 이같은 행동을 벌인 걸까요.
거슬러 올라가면 1월에는 작가들의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김금희 작가는 '이상문학상' 주최 출판사인 '문학사상사'가 수상 조건으로 내건 '단편 저작권 3년 양도' 규정이 "노예계약이나 다름 없다"며 계약 거부와 함께 우수상 수상을 보이콧했습니다. 김 작가와 같은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은영 작가도 "출판사에 조항 수정을 요구했지만 관행이란 이유로 거절 당했다"며 역시 상을 받지 않기로 했죠. 이기호 작가도 두 작가의 보이콧 대열에 합류하며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이들의 보이콧은 상을 빌미로 저작권을 독점하려는 출판계의 꼼수에 대한 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문학상의 명성을 이용해 젊은 신인 작가들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업계의 오랜 불공정 관행에 작가들이 철퇴를 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은정 문학평론가는 이에 대해 "젊은 신인 작가들을 출판사 마케팅에 이용하는 업계의 기존 판매 매커니즘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하지만 출판사들은 기존 관습을 반복하며 공정함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출판계의 이상 기류는 6개월 뒤인 7월에 다시 감지됐습니다. 이번에는 작가들은 물론, 독자와 지역 서점까지 가세하며 문제가 된 출판사는 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봉곤 작가가 소설 '그런 생활'과 '여름, 스피드'에 지인과 나눈 메신저 대화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켰고, 이는 문학계의 인용 윤리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김 작가의 지인은 수 차례 출판사에 수정과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출판사는 늑장 대처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대중의 거센 반발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작가들이 속속 입장을 내며 출판사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김봉곤 작가는 '그런 생활'로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기에 더욱 문제가 됐습니다. 김 작가와 함께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는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창비에서 내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소설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장류진 작가의 입장 표명에 이어, 이현석 작가도 창작과 비평 보이콧 선언에 합류했습니다. 이 작가는 그러면서 "이번 논란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지나갈 경우 두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해지한다"는 초강수까지 뒀죠. 이들을 비롯해 계간 문학동네와 창비 가을호에 원고를 싣지 않겠다는 작가들의 보이콧 선언이 이어졌습니다.
앞선 문학사상사 보이콧 때와 차이는 문학동네와 창비의 경우 대형 출판사로 업계 내 영향력이 큰 곳입니다. 두 출판사를 상대로 벌인 작가들의 보이콧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장 평론가는 이에 대해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에 이어 이번 보이콧까지 출판계의 권위가 이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들이 출판계의 부당한 요구에 더욱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지역서점들도 보이콧 대열에 합류하며 작가들의 선언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일부 동네서점은 앞서 해당 책들을 폐기 처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아마도책방'은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서점 운영자로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 참담했고, 두 출판사와 작가의 미온한 대처를 지켜보며 크게 실망했다"며 "이제 손님들께 책을 권할 수 없게 됐고 서가에서 완전히 치웠다. 두 출판사의 다른 책도 당당히 판매할 자신이 없다"고 공지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한 북카페 '선유서가'는 15일 "해당이슈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과 적절한 대응이 있기까지 김봉곤 작가의 책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독자들은 문학동네와 창비 책을 살지 말자는 '불매운동'까지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누리꾼들은 SNS에 "독자의 목소리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거냐. 내가 알아서 사지 말아야겠다"(a**********), "수상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문학동네) 책을 구매하는 일은 없다"(2********), "너무 실망스럽다. 다신 문학동네와 창비 책을 사지 않겠다"(a*******)는 댓글을 달며 분노를 표출했죠.
작가들과 서점의 한목소리에 김 작가와 출판사도 뒤늦게 대책을 내놨습니다. 김 작가는 문제가 불거진 지 10일 만인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죄드린다"며 소설 '그런 생활'로 탄 젊은작가상을 반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학동네와 창비는 앞서 '그런 생활'이 수록된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집'(문학동네), '시절과 기분'(창비)과 '여름, 스피드' 소설집에 대한 판매 중단과 교환을 약속했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집'은 논란이 터진 뒤 판매 순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이젠 살 수 없는 책이 돼버렸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업계 내 권력을 이용해 윤리적 문제도 덮으려는 출판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소연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기본적인 윤리 문제를 질문하고, 확인하고 걸러내지 못한 문단 비평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최근 YTN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문단 권력과 출판 자본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데, 출판 자본에 유리한 쪽으로 작가나 작품의 문학성을 판단하는 구조"라며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문단 내 목소리가 필요하고, 독자들이나 지식인 사회에서 끊임 없이 문제제기를 한다면 출판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