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조직이 성 관련 비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까지 터지면서 특히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여론이 싸늘하다.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남성 중심 문화, 수직적 상하관계가 다른 사회 각 조직에 비해 여전히 강하다는 게 우선 배경으로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지방공무원 사회가 '공인의식'이나 도덕성이 유달리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4월초 부산시장 집무실에서 성추행이 발생했다. 당시 오거돈 시장은 집무실로 부하 여직원을 불러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가 같은 달 23일 시장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피해자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오 전 시장을 수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자신의 여비서가 성폭행 피해를 방송으로 폭로한 다음 날 사퇴했다. 거물급 자치단체장들이 성비위로 몰락하는 장면을 지켜본 지자체에서는 '타산지석'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분위기다. 기초지자체나 기초의회에서도 성 관련 비위가 끊이지 않고 있어 민심 이반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 14일에는 부산 기장군의회 A(여)의원은 의회 의장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면서 부산경찰청에 고소했다. 해당 의회 의장은 인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전북 김제시의회 한 의원이 동료 여성 의원과의 불륜설을 인정한 뒤 의원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일련의 사건과 관련, 부산 정치권 관계자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묻지마’ 투표로 선출된 기초의회 의원들의 도덕성이나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지난 11일에는 전북 임실군 소속 팀장급 여성 공무원이 ‘성폭력 피해를 준 간부와 일하기 싫다’는 내용을 메시지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5년간 서울시에서 일어난 성희롱 성폭력 사건 중 고충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한 사건만 26건에 이른다.
공무원 조직 내 성 비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먼저 공공기관 특유의 위계질서가 거론된다. 위계는 조직 내 성 비위 문제를 다루는 데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 B구청 소속의 한 여성 공무원은 "예전과 비교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지만 직급과 상관 없이 서로 '님'이라 부르는 민간 기업에 비교하면 공무원 조직은 상하 위계가 뚜렷하다"며 "피해자가 아파도 아프다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 곳에서 장기간 일하는 특성이 성 비위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기도 한다. 피해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도 소속 집단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어렵고,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사태를 키운다는 것이다. 서울 C구청의 한 여성 공무원은 "민간 기업과 달리 같은 조직에 몸 담는 기간이 길어 계속 부딪쳐야 하고 '미투 폭로자' 꼬리표가 퇴직 때까지 붙어있을 수밖에 없어 피해자들이 목소리 내기가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앞서 4월 발생한 비서실 직원 성폭행 혐의 입건 상황에서 가해 남직원 D씨를 비서실이 아닌 다른 부서로 옮겼지만, 직무배제와 대기발령 등 인사조치를 1주일여 미적거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내부 신고가 없더라도 어떻게 사전에 성 비위를 인지하고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지자체장이나 고위 공무원이 승진과 보직 등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권력구조 때문”이라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성인지감수성이 조금이라도 결여될 경우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밖에서 봤을 때 안전하고 투명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공공기관의 부실한 성 비위 대처에 대한 불신은 크다. 조직의 폐쇄성이 사건의 묵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서울 E구청에서 일하는 한 여성 공무원은 "공공기관 특성상 나보다 조직을 더 보호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부터도 조직이 아닌, 경찰이나 외부에 우선 신고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