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는 어쩌다 밉상이 됐나

입력
2020.07.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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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가득 비가 내립니다. 수목원에 있는 정원이나 산책로마다 풀과 나무를 가득가득 심어 놓은 입장에서 보면 참 반갑고 고마운 비입니다. 제가 새로 일하게 된 국립세종수목원(10월 개원 예정입니다)은 수백 년 보전해 온 울울한 광릉숲을 배경 삼아 자리 잡은 포천의 국립수목원과는 그 시작이 참 다릅니다. 새로 생겨나는 행정복합도시 한복판, 저 멀리 아파트에 삥 둘러싸인 도시의 가운데, 햇빛 가릴 곳 하나 없던 허허벌판에 만들어졌으니까요. 물길을 살리고 땅을 돋우어, 의미 있는 공간들을 만들었고, 그에 적절한 식물들을 심어 가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려운 점은 조성이 끝나면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시설들과는 달리, 이제 갓 심은 식물들이 흙 속에 실뿌리를 만들어가며 자리를 잡고, 그들이 흡수하는 물과 양분의 힘으로 성장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하니 진정한 수목원 만들기는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긴 비가 고맙고, 햇살과 바람까지 식물들의 시간을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성급한 우리가 기다리는 날들이 좀 짧아질 수 있으려나 싶어서입니다.



새로운 수목원 산책길에서 가장 반갑게(?) 저를 맞이한 건 '자기들이 말인 줄 알아요'라는 말을 들으며 광장을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비롯해 전통정원 연못에 터를 잡고 새끼까지 낳아가며 살아가는 흰뺨검둥오리, 흰 날개를 펼쳐 저공비행을 한 후 한가로이 쉬고 있는 왜가리와 같은 동물들이었습니다. 풀도 나무도 저를 비롯한 사람들도 아직은 낯선 이곳에서 먼저 찾아와 자리를 잡은 다양한 생명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잘한다면 백지와도 같은 땅을 자연과 닮은 모습으로 가꾸어 이 여정이, 사람과 식물은 물론 뭇 생명들까지 어우러져 진정 모두가 행복한 수목원이 되어 가는 과정이 되겠다 싶어 설렜습니다.




수목원 산책길에 오감을 느끼는 식물을 모아둔 감각 정원에 이르자, 줄지어 심어 놓은 어린 편백나무들이 본래의 나무 모양과는 다른 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고라니 작품이었습니다. 입이 닿은 곳까지 잎을 뜯어 먹어 마치 나무들을 커트 머리로 이발한 듯 만들었습니다. 수형을 바꾼 고라니를 정원사라고 부를 수 없는 건, 이 이외에도 많은 여린 식물들을 먹어 치워 정원사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차원에서는 세계적인 멸종 위기 동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고라니가 우리나라에선 정원은 물론, 농작물에도 많은 피해를 주는 골칫덩어리가 된 것은, 이 땅에서 천적이 사라져 자연적인 밀도 조절에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전되어 온 깊은 숲이 아닌, 자연이라는 관점에서 균형을 잃어버린 도시에서 수목원이 자연을 닮아 가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거기에 우리 삶의 빛깔도 초록으로 바꾸어 가도록 돕는 기능을 보태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생각도 깊어 지고, 꿈꾸며 행복도 채워지는 첫 수목원 산책길 보고였습니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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