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대한 반격 차원에서, '금융 허브' 홍콩의 핵심 동력인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흔들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현실화될 경우, 중국뿐 아니라 홍콩 기반 다수 기업은 물론 세계 금융권까지 큰 충격을 받을 거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일 블룸버그통신은 미 국무부가 홍콩의 달러 페그제 유지를 어렵게 하기 위해 홍콩 소재 은행들의 미국 달러 구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홍콩의 페그제는 1미국달러당 7.75~7.85홍콩달러로 환율을 묶어 두는 고정환율제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홍콩이 금융허브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홍콩 금융기관들이 미국으로부터 달러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수요를 맞추지 못할 경우 페그제가 흔들리고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홍콩 문제를 계기로 미국 정가는 중국 금융시장을 직접 겨냥하려는 분위기다. 특히 미 국무부는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을 사실상 지지한 HSBC 등 홍콩 기반 국제 은행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국 의회 역시 최근 홍콩의 일국양제 체제를 무너뜨리는 중국 관료나 기관을 제재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에는 이들과 거래한 금융기관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금융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중국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 노출돼 있는 미국 금융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함께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월가 대표 은행 가운데 JP모건ㆍ씨티은행ㆍ뱅크오브아메리카ㆍ골드만삭스ㆍ모건스탠리 등 5개 은행은 중국 금융시장의 점진적 개방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까지 약 708억달러를 중국 시장에 투자했다.
홍콩 페그제를 직접 건드리는 조치는 자칫 세계적인 달러 수요를 폭증시켜 큰 혼란을 부를 여지가 있다. 외환거래업체 악시코프의 스티븐 이니스 수석전략가는 “미국 정부가 홍콩 페그제에 직접 공격을 가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과 동맹 관계인 중동 산유국의 달러 페그제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고,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 시스템에 거대한 불안정을 발생시켜 미국 자산의 대량 매각을 초래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홍콩 금융관리청의 에디 유(余偉文) 총재는 지난달 “홍콩의 미 달러화 접근을 막는 행위는 재앙적 행위로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8일에도 홍콩 달러는 여전히 페그제 한도 내에서 가장 높은 1달러당 7.75홍콩달러 수준을 유지하며 강세를 보였다. 다만 미국과 중국 사이 뜨거운 감자인 HSBC은행의 주가는 이날 홍콩 증시에서 3% 이상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