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1년에 한 번 '국가적 행사'를 치릅니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인데요. 이날은 영어듣기평가를 위해 항공기 운항이 전면 통제되고, 관공서와 일부 기업들 출근이 1시간 연장되기도 합니다.
이런 중요한 행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는데요. 매년 11월 치러졌던 수능이 올해는 코로나19로 2주 미뤄졌습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건 수능 일정 연기뿐만이 아닙니다. 전국 초ㆍ중ㆍ고교의 개학이 미뤄지고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의 교육 제도가 도입됐죠.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12월 3일 수능을 앞둔, 고3들은 지금 많이 혼란스럽고, 초조하다고 합니다.
이제 예전 같을 수는 없는, 코로나19로 달라져 버린 일상. 고3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기사에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3 박영후(가명)군은 코로나19로 중국 대학에 입학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원래 중국 유학을 준비 중이어서 수능을 안 볼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유학이 무산되는 바람에 뒤늦게 수능 공부를 하고 있어요"
영후군은 중국어를 전공한 친척 어른의 권유로 고2 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칭화대, 베이징대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 중이었는데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자 가족과 상의 후, 지난 1월 국내 대학 입학으로 진로를 변경했습니다.
영후군이 목표로 하는 중국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중국어 시험인 HSK 최상위 등급인 6등급과 각 대학에서 출제하는 중국어 대입 시험을 준비해야 합니다. 국내 고3 학생들이 공부하는 내신과 수능은 유학을 준비하는 영후군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영후군은 중국 유학을 결정한 고2 때부터 내신과 수능 대비보다 HSK와 중국 대입 시험 문제에 중점을 두고 공부해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중국으로 여행을 자주 다닌 덕에 중국어가 취미가 된 영후군은 HSK 5급은 따 둔 상황이었지만, 6급은 취미로 얻기는 힘든 점수였습니다. 최상위 등급인 만큼 시간과 노력 투자는 필수였습니다.
1년 동안 HSK 6급 공부에 매진하던 영후군은 고2 막바지인 지난해 12월,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짧게 다녀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한국으로 입국한 뒤 코로나19가 퍼지자 영후군은 가족과 상의 후, 대입 진로를 변경하게 된 겁니다.
영후군은 "지난 1년 동안 내신보다는 중국어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친구들보다 늦은 1년을 만회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56시간 정도 자면서 내신 준비와 수능 기출문제 등을 많이 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계획이 틀어진 건 영후군만이 아닙니다.
경기 남양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3 문혜지양(가명)은 코로나19로 준비하던 입시 계획이 모두 엉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혜지양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수시 대입을 준비 중이었는데 흐름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학종은 내신 성적뿐만 아니라 동아리, 봉사활동 등 비교과 활동과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 제도인데요. 혜지양의 원래 계획은 이랬습니다.
"학교 내신인 집필평가 기간에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 외 여유 시간에 자기소개서나 동아리 활동 등을 준비하자!"
하지만 개학이 두 달이나 미뤄지면서 학종 원서접수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혜지양은 현재 집필평가 공부와 자기소개서 등 비교과 활동 준비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7월에는 집필고사가 끝나고, 자기소개서 작성과 동아리 활동 등에 전념하고 있을 시기인데 말이죠. 개학이 두 달 미뤄진 반면, 학종 원서접수 기간은 2주 정도만 연기돼 9월 말쯤 진행된다고 합니다.
또 대학들이 학종 등 고3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구제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데, 그 제도가 대학마다 조금씩 달라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공부만 열심히 해도 모자랄 시간,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거죠.
최근 연세대는 학종 전형에서 학생부 비교과 영역 중 창의적 체험 활동, 봉사 활동, 수상 경력을 재학생과 졸업생 모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내신 성적과 교과 활동이 기재되는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만으로 학종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서울대는 수능최저학력기준만 손봤는데, 학종 지역균형선발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3개 영역 2등급 이내에서 3등급 이내로 완화했습니다. 주요 대학들이 이 같은 구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학교마다 다른 제도로 수험생들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같은 사정은 부산에서 정시를 준비하는 권이현(가명)양도 다르지 않습니다. 밤 10시, 학원을 마치고 전화 인터뷰에 응한 이현양은 "수능 일정이 연기됐지만 이건 재수생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현양 말처럼 코로나19로 재학생보다 재수생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재학생들은 온라인 개학 등으로 등교가 미뤄지며 나태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지만, 재수생들은 일상이 학교 개학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재학생보다 흔들림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특히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 온라인 수업이 생각보다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는 반응이 있었는데요.
이현양은 "사실 온라인 수업을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며 "선생님이 필기한 내용을 캡처만 하면 돼서 사실 그 시간에 강의 소리를 꺼두고 다른 공부를 하거나 문제집을 풀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현양 본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수업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고도 했는데요.
혜지양도 많은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열심히 듣지는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열심히 들은 편에 속했는데, 대부분 친구들은 자율적이다 보니 나중에 들어야지 하는 식으로 미루면서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았어요. 선생님들도 그런 학생들이 많은 걸 아시다 보니 등교 개학하고 나서 진도를 처음부터 나가기도 했고요"
혼자 집에서 학습하는 온라인 수업 특성상, 학생들의 집중력과 태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컸다고 하네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준비했던 일정이 흔들리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이 많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수능은 점점 다가오는데 코로나19로 일정은 엉키고, 스트레스 풀 곳도 없는 상황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풀곤 했지만, 이제는 혼자서 모든 걸 이겨내야 하는 답답함이 혜지양을 짓눌렀는데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자소서, 동아리 활동, 내신 준비 등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해소법을 생각하기보다 당장 닥친 일을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크다"는 삭막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커지는 불안감에 학원 수업 의존도 높아져 코로나19가 한창 확산 중인 기간에도 학원 수업은 여전히 빠지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고, 불안함은 커져 학원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서울 한 고교에서 정시를 준비 중인 김희지(가명)양도 "뉴스에서는 코로나19로 학원이 문을 대부분 닫았다고 나왔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학원에 수업을 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친구 중에는 학원 선생님 집에서 공부를 한 학생도 있었다는 희지양은 "학원이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데 불안하니까, 친구 부모님이 학원 선생님께 부탁해서 이틀 정도 선생님 집에서 수업을 했다고 들었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희지양은 과외도 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렇게라도 준비해 두지 않으면 우리가 재수생에 비해 불리할 것이란 불안감이 너무 컸던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5월 '이태원발 학원 강사 감염 사건'이 터졌을 때는 희지양도 꽤 불안했다고 밝혔습니다. 희지양은 "그때는 학원 선생님이나 저희나 마스크를 더 철저히 쓰고, 경각심을 가졌던 것 같다"며 "하지만 '걸리면 큰일 나지만, 나는 안 걸릴 거야'라는 근거 없는 마음이 더 컸다"고 전했습니다.
그럼 오프라인 개학 후 학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전국 고3은 5월 20일 등교를 실시했습니다.
학생들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코로나19로 가장 달라진 학교 생활은 시끌시끌하던 급식 시간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현양은 점심시간이 원래 1시간이었는데 개학 후 1시간 40분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는데요. 지정석에서 밥을 먹는데 모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식사를 한다고 하네요. 대화를 못하게 했기 때문인데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삭막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개학 한 달이 지나자, 긴장이 조금 완화돼 규제가 느슨해진 학교도 있습니다. 혜지양은 "칸막이를 설치하고 밥을 먹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고 삭막하게 느껴졌다"며 "점심시간에는 급식판 긁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 우울하게 식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긴장이 좀 누그러졌다"며 "아이들이 조금씩 몰래 대화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과정을 겪으며 혜지양은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전국 고3 학생들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모의평가를 지난달 18일 치렀는데요. 이날 고사장에서는 마스크 쓰기가 원칙이었습니다.
이현양은 "마스크 끼고 시험을 보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숨도 쉬기 힘들고 집중도 잘 안 됐다"며 "제가 원래 폐활량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런지 모의평가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혼자 마스크를 벗었다"고 했습니다. 이현양은 다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사과했는데요. 이현양은 "당시 감독관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싶었던지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희지양도 모의평가 때 마스크를 끼고 시험을 보면서 수능 당일 시험을 치를 걱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수능 당일 착용할 얇은 덴탈 마스크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았어요. 두꺼운 마스크는 아무래도 더 덥고 하니까, 수능용 마스크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지양은 평상시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인지는 몰랐다고 전했습니다. 공부나 컨디션 관리 외에도 마스크까지 신경 써야 하니 말이죠.
학종을 준비 중인 혜지양은 아마 자소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쯤 집필평가를 마치고 독서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등 비교과 영역을 준비했을 테죠.
이현양은 학교 열람실 등 다른 이들과 함께 경쟁심을 자극하며 공부했을 겁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요즘,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돼버렸는데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마음을 다잡는 수험생들도 많이 있죠. 학생들은 이런 공부 환경 또한 그립다고 합니다.
희지양도 커피숍이나 열람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통해 공부했는데 이제 오프라인 모임을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유학을 준비했던 영후군은 진주에서 서울로 가서 중국 입시 교육 학원에 다니거나 중국 단기 연수를 갈 참이었습니다.
수능까지 5개월 남짓 남은 상황, 코로나19가 확산 중인 이 시점에서도 열심히 공부 중인 고3 친구들에게 네 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3 친구들도 남은 수능까지 서로 조심하면서 컨디션 관리 잘하고 시험 잘 치렀으면 해요"(권이현)
"어떻게 하든 다 처음이고 모두가 당황스러운 상황이잖아. 그러다 보니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다 힘드니까 견디자 친구들아. 어쩔 수가 없다. 즐길 수도 없으니 다 같이 버티자"(문혜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얘들아. 정신 줄 부여잡고 남은 기간 열심히 불태우자. 코로나19 따위가 우리를 이길 수 없어(웃음). 모두들 파이팅!"(김희지)
"최대한 코로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공부 계속 꾸준히 해서 좋은 결과 얻었으면 좋겠다"(박영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