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접경국 러시아, 윈윈하려면 ‘444 법칙’을 기억하라

입력
2020.07.04 04:30
12면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6> 가까운 만큼 '쓸모'가 많은 나라 러시아

한반도와 국 접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두 곳뿐이다. 모두가 중국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러시아도 한반도 북동쪽 끄트머리와 살짝 맞닿아 있는 나라다. 그만큼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까울뿐더러 남북한 문제 등 우리나라 주요 현안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이처럼 중요한 나라임에도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러시아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지 모른다.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에게 쓸모가 많은 나라다. 가장 쉽게 ‘윈윈(win-win)’을 꾀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영하 40도 이하 혹한의 날씨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는데,  세 가지 모두 ‘444’라는 러시아의 오래된 농담과 관련이 깊다. '444'는 “‘4’라는 숫자와 관련된 상황이 아니면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는 의미다. 

첫 번째는 날씨다. 러시아엔 날씨가 영하 40도 이하가 아니면 함부로 춥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러시아는 혹한의 날씨를 자랑한다. 시베리아라는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좀체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련 시절에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시베리아 한복판에 보내 이들을 통해 시베리아 개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베리아는 러시아인들이 꺼리는 지역이다.

인구분포를 봐도 그렇다. 러시아 인구 1억4,000만명 가운데 1억2,000만명이 국토의 28%에 해당하는 우랄 산맥 서쪽에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2,000만명은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산다. 1인당 국민소득 역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구조다. 유럽과 가까운 우랄 산맥 서쪽 지역은 평균 2만5,000달러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와 가까운 극동지역은 3,000달러 수준으로 큰 편차를 보인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국토 균형 발전 차원에서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개발에 관심이 많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이들 지역의 발전이 관건이라 보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또 다른 이유도 생겼다. 극동지역에 중국의 위세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다. 현재 중국 상인들은 극동 지역의 러시아 영토 안까지 들어와 상행위를 하면서 경제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긴다. 러시아 입장에선 중국 상인들을 견제하기 위한 최선의 카드가 바로 한국과의 협력이기 때문이다. 사실 러시아는 일찍부터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주요 파트너로 한국과 북한을 주목해 왔다. 유럽 안보리 제재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근로자 4만 명 정도가 시베리아에서 벌목과 철도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도 최근 들어 북극해 항로를 바탕으로 한 동해안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극해 항로는 유럽과 동남아의 최단 이동경로로서 현재의 인도양과 수에즈 운하를 통해 로테르담과 요코하마 사이를 연결하는 기존 남부 경로보다 이동시간이 60% 가까이 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구조를 볼 때, 러시아와의 극동지역 개발에 우리 기업이 관심을 보여야 할 이유 역시 분명해 보인다.

웬만하면 4000km... 광활한 영토

러시아에서는 4,000km가 넘지 않은 거리는 멀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두 번째 ‘4’다. 그만큼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활한 영토를 갖고 있다. 국토의 양끝을 기준으로 시차가 11시간에 이를 정도다. 국토가 넓으니 자원 또한 풍부하고 다양하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석탄 매장량도 세계 2위를 자랑한다. 원유는 세계 매장량의 12.7%를 차지해 세계 6위에 해당하는데, 생산량이 많아 미국, 사우디와 함께 세계 3대 산유국으로 꼽힌다.

국토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매장돼 있는지 러시아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과거 반체제 정치범들의 유형지였던 시베리아 남동부에 있는 수호이로그 지역에서 2019년에 매장량 1,780여톤에 해당하는 100조원이 넘는 규모의 사상 최대 금광이 발견돼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하자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의 드넓은 영토 위에는 다양한 농작물과 산림자원이 자라나고 있다. 러시아의 밀 생산량은 세계 3위에 해당하며, 수출량을 기준으로는 세계 1위다. 산림자원 역시 세계 산림의 2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산림부국이다.

사실 ‘자원부자’ 러시아는 그 자체로 우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다양한 교류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우선 원유와 천연가스, 철광석 등 우리나라 주요 산업 원자재를 러시아를 통해 수급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 목재 역시 마찬가지다. 수입 원목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저렴한 합판 용도의 뉴질랜드산 원목 수입이 가장 많은데, 러시아산 원목은 칠레에 이어 3위 수준이다.

실제로  2016~2019년 대 러시아 수입품 상위 10대 품목을 살펴보면, 1위 원유, 2위 나프타, 3위 유연탄, 4위 천연가스 등 천연 자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게와 명태와 같은 식자재 역시 러시아와의 주요 수입품 중 하나다. 향후에 자원 확보 수월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은 중요하다 할 것이다.

40도 이하는 술이라 부르지 마라

마지막 ‘4’는 보드카와 관련된다. 독주를 즐기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도수가 40도 이하인 술은 술이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실제 2011년까지 러시아에선 맥주는 술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주류법상 알코올 농도가 10% 미만이면 음료수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애주가인지는 관련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4년에 발표한 ‘술과 건강에 대한 세계 현황 보고서 2014’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술을 즐기는 국가로 집계되었다. 세계 평균이 연간 6.2리터를 마시는 것으로 집계된 반면, 러시아는 연간 15.7리터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1위(벨라루스)와 6위(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국가들까지 합하면 아마도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할 것이다. 

러시아인들에게 술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혹한의 날씨에서 몸을 따끈하게 녹여 주는 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러시아 대표술인 보드카의 어원도 ‘생명을 유지하는 작은 물’이라는 의미로 초기에는 부상 부위를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추위 때문이라도 높은 도수의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70세로 조사대상 193개국 가운데 124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평균 수명이 낮은 결정적인 이유는 남성 때문이다. 러시아 여성의 평균 수명은 76세인데 남성은 64살에 그쳤다.

짧은 평균 수명으로 인해 연금 수급을 둘러싼 마찰이 벌이지기도 했다.  2018년 러시아 정부는 연금 수급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연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러시아인들은 이 결정에 격분했다.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러시아 남성은 1년 정도 밖에 연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과음'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음주량을 조절에 나서고 있다. 초기 보드카는 도수가 80도를 넘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40도 수준까지 낮아졌다.  1985년 집권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보드카 생산량을 급격히 줄이고, 정오 이전엔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도입했다.

그럼에도  러시아 국민의 건강 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보건부는 보건복지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관련 예산 확대와 건강 예방 캠페인 적극 지원 하고 있다. 

특히  의료 서비스가 취약한 극동지역의 경우 2015년 이후 외국인들의 의료면허를 인정해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주목 받은 한국의 선진적인 의료 시스템, 즉 'K-의료'가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인 셈이다. 

이처럼 러시아는 한국에게 어느 나라보다 중요한 파트너다.  자원과 식량이 부족하고, 남북 평화 모드 조성을 위해 극동지역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국민들의 보건 복지 문제 해결과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개발 그리고 극동지역의 중국의 견제를 위해서도 한국과의 협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두 나라가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발전적인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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