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수사심의위로 몰려들 것" vs "종료 휘슬 울린 뒤 룰 따지나"

입력
2020.06.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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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수사 중단ㆍ불기소 권고' 후폭풍
여권, 진보단체 '기소 강행' 압박
재계 "위원회 문제는 대검 책임" 반론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내린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 의결의 후폭풍이 만만찮다. 여권과 진보 시민단체에서는 외부 전문가 판단을 문제 삼아 기소 강행을 주장하는 반면, 재계에서는 검찰이 자체 개혁안으로 만든 제도를 부정할 셈이냐면서 맞섰다.

수사심의위는 26일 10 대 3의 표 차이로 이 부회장 등의 불기소가 타당하다고 결론을 냈다. 뜻밖의 압도적 기소 반대로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검찰이 2연패를 당하며 대형 암초에 부딪히자 여권 등에선 수사심의위 자체를 공격하면서 고심에 빠진 검찰을 향해 기소 강행을 압박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런 식이면) 재벌은 불법행위로 수사 받아도 기소 전에 수사심의위 요청으로 비범죄화 전략에 나설 것”이라 주장했다.

수사심의위 결론을 공격하는 측에서는 고난도 법리 사건을 고작 하루 동안의 심사로 물거품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다. 외부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수사기록이 20만쪽인 방대한 사건을 50쪽 검찰 의견서와 30분씩의 구두진술 만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9일 법원이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이 부회장의 책임 유무 등은 재판에서 다퉈야 할 사안”이라고 밝힌 대목 또한 심의위에서 간과됐다는 지적이다.

반면 삼성 등 재계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룰을 문제 삼느냐”며 검찰 기소에 제동을 걸었다. 사안이 복잡해도 회계 전문가와 변호사, 교수 등이 대거 포진한 만큼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힌 범죄혐의인 자본시장법상의 사기적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등 혐의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이다.  설령 비전문가가 왔다면 이 역시 대검이 구성해온 전문가 ‘풀단’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위원들의 전문성이 문제라면 모든 사건은 검찰 내 다른 제도인 검사와 법률가 중심의 전문수사자문단만 가동해야 할 것”이라 비꼬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대형 사건의 피의자들이 수사심의위로 몰려들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던 2018년 초 자체 개혁안으로 도입된 수사심의위가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 오너 등이 피의자인 사건에서 제도의 맹점을 아는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을 동원한다면 검찰 기소에 제동을 거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수사심의위 풀단의 성향 등 그 속사정을 아는 전관들의 몸값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 말했다.

반면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인 제도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제도만 보완하면 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사건 난이도에 걸맞게 위원마다 충분한 판단 시간을 주고 치열한 토론의 장을 더욱 보장해 합당한 결론이 도출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검찰이 심의위 결정에 기속되지 않는 현재 제도라면 심의위를 가동할 이유가 없다”면서 심의위 구속력 강화도 주문했다.

손현성 기자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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