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대마저 ‘우드로 윌슨’ 지우기... 反인종차별 물결, 美 역사 새로 쓴다

입력
2020.06.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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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기려 ‘윌슨 스쿨’ 등 명명
흑인 입학금지, KKK 지지 등
인종차별 행적 논란돼 이름 삭제
뉴욕 자연사박물관 루스벨트 동상
인종차별 상징 비판 탓 철거 승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반(反)인종차별 시위의 물결로 인해 논란의 미국 역대 대통령들도 공적 기념공간에서 잇따라 퇴출당하고 있다.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군 상징물 철거를 넘어 미국 역사를 새로 쓰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과 뗄 수 없는 관계인 미 명문 사학 프린스턴대가 결국 윌슨의 유산과 결별하기로 했다. 프린스턴대 이사회는 27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정책대학원과 기숙형 대학 명칭에 있는 윌슨의 이름을 삭제키로 결정했다. 28대(1913년~1921년)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윌슨은 1902년부터 1910년까지 프린스턴대 총장을 맡았다. 이 기간 프린스턴대는 비약적으로 성장해 미국 대표 사학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의 이름을 딴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문제 스쿨'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과 함께 이 분야 최고 교육기관으로 꼽힌다.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 창설과 국제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미 외교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나, 인종차별주의자의 면모가 재발견돼 논란에 휩싸여 왔다. 그는 총장 시절 흑인 학생 입학을 금지시켰고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을 지지했으며 대통령 취임 후에도 정부 내 흑인 관리들을 숙청했다. 이 때문에 2015년부터 재학생들이 '반(反)윌슨' 시위를 벌였으나 학교 측은 이를 일축해왔다.

프린스턴대 이사회는 이날 "윌슨의 이름은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폐해와 맞서 싸우기 위해 헌신해야 하는 학교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윌슨의 인종주의는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하고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뉴저지주 몬머스대도 교내 '그레이트 홀'에서 윌슨의 이름을 뺐다. 

윌슨 뿐만 아니라 26대(1901년~1909년)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도 퇴출 대상에 올랐다. 최근 뉴욕 맨해튼의 자연사박물관은 건물 앞에 설치된 루즈벨트 동상 철거를 뉴욕시에 요청해 승인 받았다. 1940년 설치된 이 동상은 말 위에 앉은 루즈벨트가 흑인과 원주민의 부축을 받아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상징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80년만의 철거에 대해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문제가 많은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적절한 시기에 내려진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앞에 설치된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 동상도 최근 시위대가 철거를 시도했다. 7대 대통령인 잭슨은 19세기 영국과의 전쟁 공로로 '영웅'으로 추앙받아왔으나 인디언 부족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을 두고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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