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패 중에도 선수 챙긴 감독님 위해"…꼭 이기고 싶었던 SK의 절실함

입력
2020.06.26 00:00
더블헤더 1차전 중 염경엽 감독 쓰러져 병원 입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프로야구 SK 선수들이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더블헤더 2차전에서 7-0 영봉승을 거둔 뒤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염경엽(52) SK 감독이었다. 염 감독은 이날 더블헤더 1차전 2회초 2사 후 두산 오재일이 타격하는 순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천 길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의식을 회복하느라 선수들은 수장 없이 경기를 뛰었다. 1차전은 충격 여파로 두산에 완패(6-14)했지만 심기일전한 2차전에서 마침내 8연패 사슬을 끊었다.

이날 현장 분위기는 적막했다. 그 동안 건강 문제로 경기 중 병원으로 향한 감독들이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경기 중 실신해서 구급차로 실려가는 사례는 프로야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상대 팀 김태형 두산 감독이 깜짝 놀라 1루 더그아웃으로 달려갈 정도로 양 팀 선수단 모두 걱정이 가득했다. 감독이 쓰러지는 돌발 상황에 경기는 응원단과 선수별 응원곡 없이 진행됐다.

시즌 초반 10연패 그리고 다시 이어진 긴 연패로 선수단은 마음이 무거웠다. 심지어 사령탑이 경기 중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죄책감까지 들었다. 2차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된 문승원은 경기 후 “감독님이 쓰러지셔서 놀랐고, 마음도 안 좋았다”며 “전날 감독님이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참들과 함께 식사도 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많이 힘드셨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2차전은 선수들이 더 이기려고 했었고, 승리로 이어져 연패도 끊었다”고 밝혔다. 주장 최정은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2차전은 꼭 잡고 싶었다”며 “감독님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쾌유를 빌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염 감독은 불충분한 식사와 수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신이 매우 쇠약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SK 구단 관계자는 “현재 의식은 있는 상태”라며 “저림 증세와 가슴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화까지 나눌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과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입원이 필요하다는 병원의 권유에 따라 염 감독은 입원해 추가 검사를 받기로 했다. 염 감독이 안정을 찾는 동안 팀은 박경완 수석코치 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감독대행으로 승리를 따낸 박경완 코치는 “감독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는데 수석코치로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감독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잘 추스르도록 하겠다. 감독님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올해 9위에 처진 팀 성적과 잦은 연패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시즌 초반 10연패를 당했고, 이날 경기 전까지 7연패 중이었다. 예민한 성격으로 지난해 4월 한 때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던 염 감독은 평소에도 식사량이 적었는데 연패 기간엔 더욱 줄었다. 불면증으로 잠 못 드는 밤도 많았다. 최근 취재진과 경기 전 인터뷰 때는 어두운 표정으로 “야구가 정말 어렵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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