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사전 검토하고 400건 넘는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사안을 다룬 두 개의 장에서만 수정 요청이 110여곳에 달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대북 문제에 관한 볼턴의 시각을 상당히 우려했음을 짐작케 한다.
22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17쪽짜리 서류를 보면 백악관은 볼턴의 저서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 415곳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해당 서류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볼턴 회고록을 사전에 받아 검토한 뒤 만든 목록이다.
남북ㆍ한미ㆍ북미 정상간 논의내용과 고위급 인사 대화 등 한반도 관련 기술에 대한 오류 정정 요구가 단연 눈에 띈다. 백악관은 한미관계 균열과 북미관계 악화를 우려한 듯, 문장 삭제나 볼턴이 단정적으로 서술한 표현을 고칠 것을 주문했다. 예컨대 볼턴이 ‘북한 비핵화란 용어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미국의 근본적인 국가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쓴 부분에 ‘내 추측에는’ 이라는 말을 넣으라고 했다. 볼턴의 입장이 미 정부 전체의 견해로 오도될 가능성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실제 책 본문에는 ‘내 관점에서’ 라는 식으로 반영됐다.
그러나 볼턴이 백악관 측 요구를 모두 수용한 건 아니다. 저서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 사정이 어려워지면 일본을 이슈로 만든다’라고 나왔는데, 문 대통령을 ‘한국인들’로 바꾸라는 백악관 측 요청을 볼턴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미 법무부는 회고록에 국가기밀이 상당수 포함됐다며 출간금지 소송을 냈지만, 워싱턴 연방법원은 이미 핵심 내용 언론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정부의 청원을 기각했다. 다만, 국가안보 누설과 관련한 차후 소송에선 볼턴이 수익 몰수와 형사 처벌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출간(23일)을 코 앞에 두고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은 거센 말폭탄을 주고 받았다. 트럼프는 이날 '미친 사람(wacko)' '거짓말쟁이' 등의 단어를 써가며 볼턴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이날 밤늦게 ‘큰 사실 왜곡’ 등 "한국 정부가 볼턴 회고록에 유감을 표했다"는 내용의 국내 언론 영문기사를 리트윗하면서 “봐라, 볼턴은 법을 어겼다. 기밀 정보!”라고 적었다. 같은 날 볼턴은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판한 트럼프를 겨냥해 “(그야 말로) 해고돼야 한다”며 낙선을 거듭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