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선 뒤집기’ 수사 보고서, 진짜 타깃은 미국 대법원?

입력
2025.01.15 21:30
14면
WP “스미스 특검의 ‘연방대법원 비판’ 주목해야”
‘대통령 광범위한 면책 특권’ 인정 문제점 재조명
트럼프에 ‘무소불위 집권 2기’ 열어준 ‘역설’ 초래

“잭 스미스, 미국 연방대법원을 미묘하게 비난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사건 수사보고서에 대해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4일(현지시간) 보도한 해설 기사 제목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팀의 최종 보고서에서 가장 흥미롭고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대법원 저격’이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7월 트럼프 대선 캠페인에 날개를 달아준 ‘보수 우위’ 미국 대법원의 ‘대통령 재임 중 행위의 면책특권 인정’ 결정에 따른 부작용이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새 증거 없어도... 맹탕 보고서 아니다"

WP와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새벽 미 법무부가 공개한 ‘대선 전복 시도 사건 수사 보고서’에 트럼프의 혐의와 관련한 ‘새로운 증거’는 담기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보고서에서 스미스 특검은 “(기소 취소 이유인) 트럼프의 대선 승리와 임박한 대통령직 복귀를 제외하면, (이미)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그는 유죄 평결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고 주장했을 뿐, 20일 취임을 앞둔 트럼프에게 치명타를 안길 ‘새 팩트’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맹탕 보고서’는 아니라는 게 WP의 진단이다. 특검은 137쪽짜리 보고서에서 4분의 1 분량을 작년 7월 1일 대법원 판단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2020년 11월 대선 패배를 뒤엎기 위해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이듬해 1월 6일 의회의 선거 결과 인증까지 방해한 트럼프에게 당시 대법원이 “대통령의 공무상 행위에는 광범위한 면책 특권이 인정된다”며 면죄부를 부여한 탓이다.

보고서는 대법원 결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특검은 “과거 어떤 법원도 대통령의 공무 행위가 형사 책임에서 면제된다고 판결한 적이 없고, 헌법의 어느 조항도 대통령에게 그러한 면책권을 명시적으로 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워터게이트 스캔들’ 주인공인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잠재적 범죄를 수사했을 때에도 면책특권 전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은 분열적… 무법지대 만들어”

‘트럼프 팀’의 자기모순도 꼬집었다. 2021년 1월 상원의 탄핵 재판 때 트럼프의 변호인이 “(곧 퇴임하는) 전직 대통령은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 된다”고 주장해 놓고선, 막상 기소되자 ‘면책특권’을 내세웠고 이를 대법원이 수용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대법원 결정을 ‘분열적’이라고 표현한 뒤, “대통령 주변에 무법지대를 만들었다”는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의 소수 의견을 인용했다.

이와 관련, 특검 수사가 초래한 ‘역설’도 재차 언급됐다. NYT는 “트럼프에게 (형사) 책임을 지우려는 스미스의 노력이 트럼프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며 끝났다”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귀결됐다고 짚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 특검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피터 자이덴버그 변호사는 “스미스의 잘못이 아니다. 그가 직면한 장애물(보수 우위 대법원)은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대통령 행위의 합법성을 추적할 권한을 잃은 상태에서 트럼프가 집권 2기를 열게 됐고, 이 부분이 지난해 7월 대법원 결정의 가장 나쁜 유산이라는 뜻이다.

김정우 기자
손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