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와 동전의 양면이고, '정치의 부재 또는 실종'과 같은 말이다. 사법기관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빼자는 게 '개혁'이라면, 정치의 사법화는 반개혁적이다. 오히려 법원과 검찰의 힘을 증가시킨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법개혁도 검찰개혁도 없다.
위헌적 비상계엄의 출발점에 '정치의 사법화'가 있었다. 사법이 정치에 물들었다고 늘 비판하지만, 사법을 정치에 끌어들인 것은 '정치'가 먼저다. 정치권에서 생산한 각종 의혹을 끊임없이 탄핵소추 의결서로, 고소, 고발장으로 둔갑시켜 헌법재판소로, 검찰로, 경찰로, 공수처로 던졌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의도로 반대 세력을 공격해 왔지만, 반대 세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부메랑처럼 역고소, 고발로 돌아왔고, 처리하지 못한 정치적 사건들은 수사기관 캐비닛에 켜켜이 쌓여 있다.
22대 국회는 '탄핵'을 위한 국회였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 행사를 제외하고는, 예외적 상황에서 비상적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탄핵소추권은 정치적 목적으로 오남용됐다. 헌법과 법률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기각될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탄핵소추가 되면 바로 '직무 정지'가 되는 법의 맹점을 철저히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했다. 당대표와 민주당을 수사한 검사들을 탄핵하고 대북 송금 수사가 조작이라는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입법권을 남용하면서 '정치의 사법화'는 심화했다.
이에 대응한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는 위헌적이고 위법적이어서 헌법재판 및 수사의 대상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수사 및 재판에 적극 응해야 한다. 이견이 있더라도 수사기관, 재판기관의 요구에 따르고, 사법절차 내에서 다퉈야 한다.
정치권도 대통령 측과 공방을 벌일 게 아니라, 왜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연일 국회를 열어놓고 수사 책임자, 수사 대상자들을 생중계 카메라 앞에 불러내어 호통치고 나무랄 뿐, 정치 본래의 기능은 실종됐다. 가짜뉴스와 음모론마저 정치권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진행된 내란죄 수사와 헌법재판 과정에서 수많은 법률적 모순과 미비점이 드러났다.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가? 압수수색영장, 체포영장 청구 등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하는 관할법원은 어디인가? 공수처의 구속기간은 법적으로 얼마인가?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수사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적법절차에 따르지 않는다고 서로를 공격하지만, 문제는 졸속으로 통과된 불완전한 법률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국회는 기본적으로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임에도 이를 도외시한 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이후에도 계속 정치적 의도를 담은 고소·고발, 탄핵소추권을 남발하고 있다. 수사 대상자들도 적법절차에 따라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의미를 담아 과도하게 대응한다. 양쪽의 공방은 국민이 바라는 조속한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완전하나마 현행법을 해석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수사기관과 법원의 몫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불완전한 법안의 문제는 애써 외면한 채, 포퓰리즘에 입각한 생색내기와 보여주기식 논쟁에 여념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국회는 입법 공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법률을 만든 데 대한 통렬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목전에 잡힐 것 같은 권력을 움켜쥐는 데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법률이 신속하고 정의로운 형사사법 집행에 도움이 되는지 원점에서 되돌아보길 바란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법절차가 신속하고 정의롭게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시민들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