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휴대폰 속 전체 녹음파일에 대한 사용 동의를 교묘하게 받아냈다'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의 '돈 봉투' 1심 재판부가 '이정근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배제한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휴대폰 확보에서부터 전방위적 포렌식에 이르기까지 법원이 위법 수사 가능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검찰의 '스모킹건'은 무용지물이 됐고, 관련 재판들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12일 송 대표의 정당법 위반 등 혐의 1심 판결문을 보면, 208쪽 중 58쪽이 '이정근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따지는 데 할애됐다. 재판부는 ①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휴대폰 3대를 자발적으로 임의제출한 것인지 ②제출 과정서 휴대폰 내부 정보를 통째로 내겠단 의사를 명확히 표시했는지로 구분해 판단했다.
재판부는 '2022년 10월 7일 오후 7시 20분 설득 끝에 임의제출 의사를 확인했다'는 검찰 수사보고의 신빙성부터 의심했다. 자신의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휴대폰 행방에 대해 두 달간 거짓말을 일삼던 이 전 부총장이 검찰 설득으로 돌연 입장을 바꾼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본 것이다.
7일 오후 3시까지만 하더라도 이 전 부총장이 '돌로 휴대폰을 깨버렸다'며 행동을 재연해보이기까지 한 점은 재판부의 의구심을 더욱 키웠다. 검찰이 당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녹화한 피의자신문 영상에선 수사보고에 기재된 것과 같은 설득 과정이 확인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던 이 전 부총장이 거짓말을 추궁하는 검찰에 압박을 느껴 휴대폰을 제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이 전 부총장 변호인 역시 의뢰인의 증거은닉 행위에 가담한 꼴이 돼버린 상황이라, 제대로 된 조력을 제공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휴대폰 제출 과정에 임의성을 인정하더라도, 당초 수사 대상 혐의가 아닌 '돈 봉투' 사건 파악에까지 휴대폰 속 통화녹음을 활용한 검찰 수사는 위법하다고 봤다. 제출 당시 이 전 부총장이 '범위 제한 없는 제출 의사를 확정적으로 밝혔다'는 검찰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근거로 든 7회 피의자신문조서에선 'CJ나 한국복합물류 관련 사건과 같은 다른 사건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어, CJ와 동떨어진 모든 사건에도 내겠단 의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일 영상녹화 CD는 파손돼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돈 봉투 의혹이 불거질 경우 핵심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이 전 부총장이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까지 제공했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고 봤다. 돈 봉투 사건 보도 직후 이 전 부총장 변호인은 "해당 녹취록은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것"이란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의 관련 재판에서의 증언들 역시 '위법 수집' 정황에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당시엔 엄청나게 무서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겠단 마음으로 검찰에 협조했다" "검찰에서 돈 봉투 사건 언급은 없어서 '어떤 것에 한정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등이었다.
'자신의 휴대폰 3대를 다른 사건에 사용해도 좋다는 취지의 법정 진술도 있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선 "이미 검사가 녹음파일 전체를 확보한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한 증언들에 불과해, 제출 당시에도 이 전 부총장 의사가 그 증언들과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법원이 "실체적 진실 규명의 필요성에도, 위법한 압수수색을 억제할 대응책으로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정하면서 검찰의 핵심 근거는 무력화됐고, 송 대표는 돈봉투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며 즉각 항소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