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대형 조선소 작업장에서 홀로 잠수 업무를 하다가 숨진 스물두 살 하청 노동자 고 김기범씨 사건(본보 2025년 1월 10일 보도) 당시 원청업체인 HD현대미포가 현장 안전감시인(텐더) 규정을 위반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1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 당일 현대미포 소속 안전감시인은 기범씨가 울산 조선소 1안벽에서 2차 잠수를 한 직후인 오전 11시30분쯤 현장을 떠났다. 기범씨는 이날 선박에 붙은 따개비 등 불순물 제거 작업을 했다. 현장에 있던 동료 잠수사 A씨는 경찰 조사 등에서 "점심 시간은 보통 낮 12시부터인데 (안전 감시인은) 오전 11시30분쯤부터 식사를 하고 쉬는 것 같았다. 사고 당시에도 현장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에 따르면 회사는 잠수사 2명을 한 조로 작업하게 해야 하고, 작업 현장에 감시인을 둬 안전 감독을 맡겨야 한다. 하지만 기범씨는 이날 홀로 물속에 들어갔고 감시인도 현장에 없었다.
감시인이 평소에도 잠수사의 안전을 챙기는 일에 소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조선소 현장 전반의 안전감시 업무를 맡았던 터라 잠수 현장에서 안 보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안전을 책임지지 않은 탓에 기범씨의 사고 사실은 뒤늦게 확인됐다. 그가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걸 처음 알아챈 사람은 안전 책임자가 아닌 동료 작업자였다. 소방당국은 오후 4시 3분이 돼서야 이미 숨진 기범씨를 발견했다.
현대미포 측은 하청업체를 탓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하청업체인 대한마린산업이 '작업이 다 끝났다'고 해서 안전 감시인이 철수한 것"이라며 원청인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 대리인인 김의택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인 현대미포는 잠수 작업을 하는 곳에 감시인을 두는 등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며 "명백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동료 잠수사들은 "예견된 사고"라며 참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동료 잠수사는 "(기범씨가) 공기를 만드는 유압호스 에어탱크 필터가 너무 오염돼 새카맣다며 교체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대표가 그냥 쓰라고 했다"고 전했다. 기범씨는 업무 필수품인 잠수 장갑 등도 사비로 구입해 썼다고 한다.
위태로움을 느낀 대한마린산업 잠수사들은 수시로 일을 그만뒀다. 입사 3개월차인 기범씨가 당시 사고 현장의 잠수사 3명 중 최고참이었던 이유다. 이 업체를 퇴사한 잠수사 B씨는 "안전불감증, 효율만 중시하는 근무 여건에 너무 질려서 수습 기간을 마치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동료 C씨도 "대표에게 위험성을 몇 차례 알렸지만 고쳐지지 않아 6, 7년간 했던 잠수 일을 그만뒀다"며 "감시인을 두기는 하지만 대부분 잠수사 출신이 아니기에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험이 부족한 잠수사가 현장에 투입되면 언젠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자주 생각했다"며 젊은 잠수사의 죽음 앞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 변호사는 "현대미포는 도급을 맡길 때 안전관리 역량이 있는 회사인지 확인했어야 한다"며 "하청을 줬으니 문제 없다는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잠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비극은 낯익다. 지난해 5월에도 꼭 닮은 사고가 있었다. HD현대삼호(옛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던 입사 7개월차 잠수사 이승곤(당시 22세)씨가 수중에서 선박 하부 따개비 제거 작업을 하다 숨졌다. 당시에도 2인1조 작업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또 안전 감시인 3명을 배치해야 했지만 2명뿐이었다. 배 두 척이 붙어 작업하는 '이중계류' 작업을 했던 상황까지 같았다. 이중계류 작업을 하면 사고 발생 시 구조 시간이 더 걸린다.
현장의 안전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HD현대삼호 사고 이후 △잠수 작업자의 숨소리까지 지상에서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풀마스크' 착용 △이중계류 작업 규제 등이 대안으로 꼽혔지만 달라진 게 없다. 산업안전공단이 2022년 발간한 '잠수작업 사고 사망 원인분석 및 안전방안 마련'에 따르면 잠수 작업 중대재해 사망 사건은 2003년~2022년 4월 모두 61건 발생했다. 최민수 전남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요즘 조선업 호황기라고 해서 작업 물량이 많아졌다"며 "비슷한 사고가 또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동료 잠수사들은 기범씨의 빈소를 찾아 부모에게 아들의 생전 마지막 사진을 전달했다. 기범씨가 연말을 함께 보내지 못한 여자친구에게 보내고 싶다며 찍어 달라고 했던 사진이다. 먼저 떠난 아들은 날이 추웠는지 손이 뻘겋게 얼었음에도 잠수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