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20일(현지시간)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를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총력전이 한창인데 현대차도 최근 완성차 기업들의 '트럼프 줄대기'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2기'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 정책 전반을 뒤엎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완성차 업계도 앞다퉈 거액의 '트럼프 보험'에 가입하는 분위기다.
12일 현대차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미국 법인을 통해 트럼프 취임식 기금에 기부금을 냈다. 현대차가 미 대통령 취임식에 기부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기부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기부 행렬에 발걸음을 맞춘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이 완성차 기업들은 지난달 트럼프 취임식에 100만 달러 기부 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협조할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밝히며 눈도장 찍기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를 포함해) 대미 투자와 수출이 많은 자동차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부금 이야기는 (미 대선 전후로) 꾸준히 있어왔다"고 귀띔했다.
다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트럼프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WSJ는 현대차가 취임식 전후 정 회장과 트럼프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회동을 추진한 적도, 이뤄질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일축했다.
북미 시장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대차 그룹 입장에서 트럼프 2기의 관세 폭탄 가능성은 '넘어야 할 산'이다. 현대차·기아는 2024년 미국 시장에서 170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GM과 도요타, 포드에 이어 미국 판매량 '톱4'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트럼프는 취임 후 최대 20%에 이르는 보편 관세와 함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집권 1기에 체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관세 협정(USMCA)' 개정까지 공언했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인 2018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USMCA로 대체된 뒤 대(對)멕시코 무역 적자가 커졌기 때문에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같은 융단폭격식 관세 공격이 현실화할 경우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로선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미국에 생산 공장이 있더라도 2만 개가 넘는 자동차 부품의 상당수를 해외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기아만 해도 멕시코 공장에서 만든 차를 미국에 보낸다. 대미 수출 거점으로 멕시코 투자를 확대해 온 자동차 업계로선 날벼락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던 전기차 보조금이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현대차가 마주할 가능성이 있는 악재다. 트럼프는 취임 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 공제를 철회하려는 뜻을 밝혔다. 보조금 완전 폐지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높지만 현실화할 경우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투자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오히려 미국 내 전기차 생산 및 투자에 탄력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미국에서 생산된 현대차 아이오닉5·아이오닉9, 기아의 EV6·EV9,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등 5개 현대차그룹 전기차들이 처음으로 올해 IRA 보조금 지급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2021년 12월 판매를 시작한 아이오닉5는 미 출시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만 대를 넘겼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IRA나 인센티브 때문에 미국에 투자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에게 중요한 미국 시장 투자와 현지화는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완공을 앞둔 미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연간 50만 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