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이르면 내달 방한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과 12·3 불법계엄으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맞춰 한미일 공조의 틈을 파고들며 발 빠르게 한국과의 관계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12일 외교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르면 2월 말로 한국 방문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2023년 11월 부산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1년 3개월 만의 방한이다. 한중 외교장관은 지난해 5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방중을 시작으로 7월(비엔티안), 9월(뉴욕) 연달아 만났다.
특히 왕 부장의 이번 방한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탄핵 국면을 맞은 한국을 향해 외형상 관계개선 의지를 강조하는 제스처다. 중국은 지난달 계엄사태로 한국 정부의 외교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는 와중에도 차관급 한중 경제공동위를 열었다. 스웨덴 총리와 일본 전·현직 총리의 방한이 미뤄지고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마저 연기될 때다.
특히 중국이 미국에 앞서 한반도 이슈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정지작업으로도 읽힌다. 20일(현지시간)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가치와 동맹을 강조한 조 바이든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이익과 거래를 앞세우는 만큼, 그간 중국에 맞서 구축한 한미일 3각 공조에도 일정 부분 균열이 불가피하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서둘러 부임해 일단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가 새 주한대사를 지명해 상원 인준을 마치려면 수개월이 걸린다.
반면 중국은 지난달 다이빙 신임 한국대사를 보내 한국과 접촉면을 넓혔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통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중국 외교부장이 방문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한한다는 것은 한국의 내부 상황을 보고 지도자들을 만나 나름대로 상황 판단을 하려는 수가 녹아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올해 11월쯤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중국은 내년 회의 의장국을 맡았다. 양국이 그 어느 때보다 교류와 협력의 강도를 높일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시진핑 주석이 11년 만에 방한할 것으로 점쳐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왕 부장의 방한은 그 신호탄으로 보인다. 외교 관례상 APEC 주최국과 차기 주최국은 서로 협력해 의제를 조율하고 리더십을 이양한다. 따라서 한중 간 소통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