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 동안 거침없이 확산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최소 10명의 사망자가 확인됐고, 건물도 9,000채 이상 불탔다. 경제적 피해 규모는 미국 화재 역사상 최고액인 73조 원 이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진화 작업 속도가 여전히 더딘 데다, 추가 산불마저 발생하고 있어 언제쯤 불길이 잡힐지는 미지수다.
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JP모건을 인용해 이번 LA 산불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현재까지 500억 달러(약 7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야기한 화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날 추정치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보험사들이 감당해야 할 금액도 무려 200억 달러(약 29조2,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내다봤다. 역대 최대 피해를 안겼던 화재는 2018년 캘리포니아주 북부 버트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로, 손실액은 약 125억 달러(약 18조2,500억 원)였다.
'선셋 파이어'로 명명된 이번 산불 피해는 과거 다른 자연재해와 비교해도 손에 꼽힐 정도다. 최악의 피해를 낳은 자연재해는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등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인데,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당시 피해액은 1,020억 달러(약 148조9,000억 원)다. 벌써 절반가량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날씨 데이터를 제공하는 민간기업 아큐웨더는 이번 산불의 손실액을 1,350억~1,500억 달러(약 197조~219조 원)로 추정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화재 진압 속도는 더딘 반면, LA 지역 곳곳에서 추가 산불도 발생했다.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 기준 진행 중인 산불은 5건인데, 피해 면적이 가장 큰 퍼시픽팰리세이즈(81㎢)·이튼(55㎢) 지역 산불의 진압률은 각각 6%, 0%다. 다른 3곳의 산불은 진압됐으나, 이날 오후 칼라바사스 북쪽 웨스트힐스 2곳에서 '케네스 산불'이 새로 일어나 강풍을 타고 급속히 번지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상자 집계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LA 카운티 검시국은 "최소 10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버트 루나 LA카운티 보안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망자 수에 대해 "솔직히 우리는 모른다. 산불 잔해를 수색해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LA 소방당국은 "퍼시픽팰리세이즈와 이튼에서만 9,000채 이상의 주택·사업장 등 건물이 손상 또는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LA에서는 산불 영향권 내 주민 18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설상가상 산불이 야기한 대기오염까지 겹쳤다. 화마(火魔)에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린 주민도, 간신히 화를 면한 주민도 모두 매캐한 연기 탓에 신음하고 있다. LA카운티 공공보건국은 전날부터 LA 전역에 연기 주의보를 발령하며 "LA 서부 해변 퍼시픽팰리세이즈 지역과 동부 내륙 알타데나 등에서 수일째 이어지는 산불의 직간적접 영향으로 공기 질이 건강에 해로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에선 식수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상수도 시스템에 많은 재가 들어가면서 수질이 급격히 떨어진 탓인데, '물 사재기' 움직임도 나타났다.
불길은 LA에 근거지를 둔 유명 인사들의 고급 저택도 덮쳤다.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 거주하던 메이저리거 출신 박찬호씨는 자택이 전소돼 인근 호텔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할리우드 배우 제임스 우즈, 맨디 무어 등 여러 유명인도 집이 소실돼 대피했다"고 전했다. 패리스 힐튼도 840만 달러(약 123억 원) 상당의 호화 저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