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팩트 체크 폐지" 저커버그, 트럼프에 항복… "SNS 오물통 될 것" 우려

입력
2025.01.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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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팩트 체크 정치적으로 편향"
'머스크 도입' 커뮤니티 노트 채택
"트럼프에 완전히 무릎 꿇다" 평가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기업인 메타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게시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팩트 체크(Fact Check)' 기능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가짜뉴스 논란이 들끓었던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자정 활동'에 나선 지 8년 만에 정책 방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허위정보나 증오 발언마저 옹호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메타가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NS상 혐오 표현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팩트 체크, 정치적으로 편향됐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5분 분량의 영상 메시지를 통해 팩트 체크 기능 폐기 방침을 공개했다. "정치적으로 편향됐다"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겠다"는 게 저커버그가 설명한 정책 전환의 이유다.

저커버그는 향후 메타가 논란을 부르는 콘텐츠를 삭제하는 대신, 사용자들이 여러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커뮤니티 노트' 방식을 차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시스템은 지난해 11·5 대선 전후 트럼프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엑스(X)에 도입한 것이다.

메타의 이번 결정은 트럼프의 압박에 백기를 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그간 트럼프는 허위정보나 혐오 표현을 걸러내는 메타의 팩트 체크 정책을 '여론 검열'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트럼프 지지 세력의 주요 공격 대상인 이민자·여성·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발언을 주로 차단한다는 점을 들어 '정치적 편파성'을 문제 삼았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발간한 책에서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나에게 불리하게 운영했다. 그를 평생 감옥에 보내겠다"며 직격하기도 했다.

실제 메타의 사실 검증 시스템이 트럼프와 대립한 측면도 있긴 하다. 메타의 팩트 체크 기능은 2016년 미 대선 국면 때 "러시아가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페이스북이 가짜뉴스 유통 경로가 됐다"는 미국 민주당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현 대통령)에게 패배한 트럼프가 이듬해 '1·6 의사당 폭동'을 선동하자, 페이스북은 그의 계정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작년 대선 승리 뒤 저커버그는 납작 엎드리는 모습이다. 트럼프의 페이스북 계정을 복원해 줬고, 지난해 11월 그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州) 팜비치 마러라고를 방문해 100만 달러(약 14억5,500만 원) 기부를 약속했다. 트럼프 최측근으로 꼽히는 데이나 화이트 미국 종합격투기 대회(UFC) CEO 등을 전날 메타 이사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는 대기업은 없다"고 짚었다. 메타의 급속한 우경화를 지적한 것이다.

글로벌 팩트 체크 기관에도 파장

메타의 팩트 체크 폐기에 따른 파장은 상당할 전망이다. 미국 CNN방송은 "온라인에서 여성을 '가정용품' '사유재산' 등으로 부르는 게 허용되고, 인터넷이 거짓·증오 콘텐츠의 오물통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메타가 자금을 지원해 온 팩트 체크 기관의 운영 악화도 불가피하다. 로이터는 "메타가 정치적 콘텐츠 관리 방식을 가장 크게 바꾼 사례"라며 "전 세계 30억 명이 사용하는 SNS 플랫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종 기자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