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3 쌍둥이 남학생을 키우는 40대 후반 엄마 A다. 큰아이는 성적이 우수해 특목고에 입학할 예정이고, 성적이 좋지 않은 작은아이는 본인 희망에 따라 일반고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요즘 선행 학습을 시켜야 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이 커졌고, 급기야 남편과의 다툼으로 번졌다.
사실 나는 선행학습에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주위에서 ‘왜 고등 과정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느냐’, ‘대부분 애들이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라며 난리였다. 결국 우리 아이들만 안 시킬 수 없어 일단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남편은 “정규 교육 과정을 잘 따라가면 되지 뭐 하러 선행학습을 시키느냐?”고 역정을 냈고, 감정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A: 요즘 소위 ‘학군지’에서는 ‘초등 의대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기보다는, 초등학생 자녀에게 일주일에 2~4번, 회당 2~3시간씩 수학 선행학습을 시킨다는 게 뼈대다. 심지어 일부 과정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에게 고1 수학 과정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매우 팽팽하지만 이런 현상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는 건 자명하다. 이것이 선행학습의 단적인 예다.
‘남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라며 학원과 과외를 돌리며 선행학습하는 모습은 한국 교육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선행학습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도 ‘학습자가 국가교육 과정, 시·도교육 과정 및 학교 교육 과정에 앞서서 하는 학습’으로 규정돼 있다. 예전에는 선행학습으로 주로 수학, 과학 등을 많이 배웠다면 사교육이 확대되면서 이젠 영어와 국어, 예체능 등까지 확대된 양상이다. 특히 성적 상위권일수록 선행학습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특목고에선 아예 학교 수업 자체가 사실상 선행학습이 이뤄졌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될 정도다.
이런 선행학습 부작용이 얼마나 크면 이를 규제하는 법까지 나왔겠는가. 보통 조기교육, 선행학습은 한두 명만 시작해도 다른 학생들이 우르르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 결과 과열 경쟁과 ‘극장 효과(극장에서 맨 앞사람이 일어서면 뒷사람도 일어서는 현상)’를 초래한다. 그래서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됐다. 선행학습은 개념 이해와 학생 개인의 자신감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수업 시간 중 집중력 감소, 과도한 자신감, 학생 여가 시간 감소, 수동적 태도 형성 등 단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선행학습을 찬성하진 않는다. 하지만 상황과 여건에 따라, 또 진학하는 고등학교에 따라 선행학습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입시 컨설턴트가 “교육적으로 선행학습은 좋지 않으니 시켜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학부모 반응이 어떨까. “매운 음식은 몸에 안 좋으니 먹여서는 안 됩니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고 싶다. 매운 음식은 위에 좋지 않지만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뇌가 매운맛을 통증으로 인식하고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진통·쾌감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은 스트레스 해소와 발모 촉진, 심혈관 질환 감소, 지방 분해 촉진 효과가 있다. 무조건 매운맛 섭취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선행학습도 마찬가지다. 적절히 조절하면 약이요, 남용하면 독이다. 적절한 선행학습은 여러 장점도 있다. 그러니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보다 아이에 따라 적절한 선행학습 수준을 정해야 한다. 선행학습은 실력 향상 계기가 될 수도, 자존감을 무너뜨려 학습 흥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의뢰인 A씨의 고민을 살펴보자. 쌍둥이인 만큼 두 자녀 모두 나이와 가정형편 등 선행학습을 할 여건은 비슷한 상황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환경이 바뀌는 시기에 이뤄지는, 소위 ‘전환기 학습’이 선행학습을 하기엔 비교적 좋은 시기다. 다만 두 아이의 성적과 학습 의지가 다르므로 학습 방법도 같이 달라져야 한다.
먼저, 큰아이는 적절한 선행학습으로 학습 동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반면, 작은아이는 선행보다는 보충, 심화 학습에 힘을 쏟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형제를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똑같은 선행과 보충 심화 학습을 시키면 결국 학습 효율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같은 학원을 보내도 그 둘의 결과물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 아이가 선행학습과 잘 맞는지 여부를 가늠할 방법이 있을까? 이는 직접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 교사나 학원 강사가 제일 잘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도 갸우뚱한다면 전국 레벨 테스트 등 기존 평가 도구를 이용해도 좋다. 언제 선행학습에 들어가면 좋을지 시기를 묻는 질문도 많다. △아이가 진도를 완전히 이해하고 심화학습까지 끝냈을 때 △학교나 학년이 바뀔 때 △상위권 성적에 들었을 때 등 몇 가지 기준을 세워놓고 고민하면 쉽다. 즉, 무조건 선행학습을 시키기보다는 아이 실력을 정확히 평가한 이후에 선행학습 여부를 결정짓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선행학습 실시 여부는 아이의 학습 수준과 열의, 학습 목표, 생활 습관을 잘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선행학습. 잘 쓰면 명약이요, 못 쓰면 독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