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에서 7일(현지시간)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LA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민 8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산불이 1분 당 축구장 다섯 개 면적을 집어삼키는 속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진화 작업이 더딘 데다 최고 풍속 162㎞/h에 달하는 강풍까지 예보돼 불길은 더 크게 번질 전망이다.
미국 LA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산불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LA 서부 퍼시픽팰리세이즈 지역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LA 북부 이튼 계곡과 북서부 실마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신문은 △팰리세이즈에서 약 11.8㎢ △이튼 계곡 인근에서 약 4㎢ △실마에서 약 2㎢ 등 총 17.8㎢가 불타고 있다며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불길이 급속도로 번진 건 돌풍 탓이다. 미국 CNN방송은 "팰리세이즈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대피로로 이용되던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덮치는 바람에 대피하던 시민이 차를 버리고 도망가야 했다"고 보도했다. LA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시 소방국은 소방관 1,400명을 동원해 화재 진압에 나섰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도 캘리포니아주에 소방 보조금을 지급했다.
인근 지역 주민 8만 명을 상대로 대피령이 내려졌고, 불에 탈 위험에 처한 건물도 1만 채가 넘는다. CNN은 "LA 소재 주택과 회사 등 21만 가구에서 정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미 NBC방송은 LA 소방국을 인용해 25세 여성 소방관 한 명이 심한 머리 부상을 입었으며, 말리부의 한 식당에서도 화상자가 다수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례적으로 건조한 날씨와 계절풍도 화재를 키우고 있는 요인이다. 남부 캘리포니아는 우기인 겨울에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5월 이후 LA의 강수량은 0.73㎝에 불과하다. 1877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적다"고 전했다. 설상가상 이미 말라붙은 지역에선 '샌타아나'라고 불리는 건조한 계절풍까지 불면서 불씨가 빠르게 퍼졌다. 이른바 '악마의 바람'이다.
미국 국립기상청(NWS)은 8일 오후까지 최대 시속 162㎞에 달하는 강한 돌풍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 때문에 소방 항공기 운항도 제한돼 진화 작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비드 아쿠나 캘리포니아주 소방국 공보담당자는 CNN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오늘 중으로는 화재 진화 작업이 힘들다"며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가장 큰 불이 난 팰리세이즈 지역은 할리우드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유명 배우들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피하는 모습을 올렸다. 배우 제임스 우즈는 엑스(X)에 불타고 있는 인근 집 사진을 올리며 "걱정에 감사드린다. 무사히 대피했다"며 "집이 아직 멀쩡할 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CNN은 LA 출신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사저도 이번 팰리세이즈 화재 대피구역 안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의 자랑스러운 딸로서 산불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피해를 잘 알고 있다"면서 "캘리포니아인들의 회복을 돕도록 행정부 차원에서 연락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워싱턴에 체류 중으로,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