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증학회장 “난치성 통증, 필수의료 정책에서 제외될까 우려”

입력
2025.01.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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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고통 지속되는 CRPS 등 지원 필요
계속되는 의정갈등에 의료 양극화 더 심화
“강대강 말고 서로 양보하며 합의점 찾아야”
일부 비전문 의사들 신경차단술 남용도 우려

“난치성 통증이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정책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요.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만 해도 고통이 너무 심해서 생을 끝내고 싶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돌보는 건 필수적인 의료가 아닌가요?”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소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신진우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필수의료만 강조하다 보면 여기에 속하지 못한 만성통증 환자들은 큰 병원에서 치료받을 기회가 점차 줄어들 수 있다”며 이렇게 되물었다. 대표적인 만성통증 질환인 CRPS는 신경기능 손상으로 극심한 통증이 지속해서 나타나는 희소난치성 질환이다. 옷깃에 스치기만 해도 ‘칼로 찌르는 듯하다’, ‘불에 타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의 심한 통증이 따라온다. 이들이 느끼는 통증 지수(NRS)는 8~10점대로, 치통(4.5점)이나 출산(7.5점)보다 높다. 현재 국내 CRPS 환자는 약 9,800명(2022년 기준)이다.

CRPS 환자뿐 아니라, 암성 통증 환자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우려다. 암성 통증은 암 환자가 겪는 통증을 포괄하는 말이다. 신 교수는 “의료 경쟁력마저 약화할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암성 통증을 줄이면 삶의 질 개선은 물론, 면역 기능이 좋아져 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어요. 암 환자에겐 굉장히 중요한 치료인데, 필수의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관련 지원을 줄이거나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줄이게 한다면 관련 환자들이 설 곳은 점차 줄어들게 돼요. 신규 의사도 통증학과로 오지 않으려 할 테니 의료 수준도 점차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병원이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도록 하는 정부 의료정책의 큰 방향성은 맞다”면서도 “의료계와 공감대 형성 없이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이런 우려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 정원 확대도 차근차근 논의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커다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서울과 지역 간의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가 꺼내든 의사 정원 확대 정책이 “오히려 의료 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고 봤다. 갑작스러운 증원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의사가 배출되고, 그로 인해 의료서비스 질이 낮아질 경우 큰 병은 서울 소재 대형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정원 확대로 지역에도 의사 수가 많아지겠지만 결국 환자들이 지역 의료를 믿지 못하고 서울로 오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차라리 수가를 올려 유능한 의사가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하거나, 교육을 통해 지역 의료의 질을 높이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의정사태로 대학병원 교수들이 사직하고 개원의로 나서는 상황도 의료 양극화를 심화할 원인으로 꼽았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으로 지방의 교수들이 자리를 옮겨요. 그러면 해당 지역 병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메울 사람이 마땅치 않으니 연구실적 등이 부족한 이를 교수로 채용하거나, 빈자리를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의 의료공백이 점차 커지는 거죠.” 그는 이어 “서로가 강대강으로 맞붙지 말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환자들을 위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1월부터 대한통증학회장을 맡은 신 교수는 적절히 교육받지 않은 의사들에 의한 신경차단술 남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신경차단술은 추간판 탈출증(허리디스크)이나 척추관 협착증 환자 등에게 주사를 통해 국소마취제나 스테로이드를 직접 주입, 통증을 완화시키는 치료법이다.

신 교수는 “시술 시간에 비해 진료비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해서 개원가를 중심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최근엔 통증질환과 관련 없는 전공과에서도 시술을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경차단술 시술 건수는 2018년 851만 건에서 지난해 2,310만 건으로 약 2.7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 급여비용도 약 3.1배 치솟았다.

그는 “스테로이드를 과다하게 또는 너무 자주 투여할 경우 해당 부위가 손상되거나 전신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의사들에 의해 신경차단술이 남발되는 모습”이라며 “일정 교육을 받은 의사가 해당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인력 기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의료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CRPS 장애 진단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해당 환자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장애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구상이다. CRPS 환자 중 증상이 심한 경우 장애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현재는 진단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 장애진단을 하려는 의사가 적고 이는 환자들의 불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통증학회가 되도록 외연 확장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한 신 교수는 “통증 자체를 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여겨 통증을 놔둘 경우 만성화하고 난치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CRPS만 해도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