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을 바짝 조였던 은행권이 새해 들어 제한을 완화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금리가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인하 기대 후퇴로 시장금리가 반등한 데다, 은행이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가산금리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고정형(혼합·주기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연 3.46~5.96%로 집계됐다. 한 달 전인 지난달 3일(연 3.396~5.85%)과 비교해 상단이 0.11%포인트, 하단이 0.064%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28일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이 15년 만에 기준금리를 연속 인하했는데도 대출금리는 되레 오른 것이다. 최고 금리는 어느새 연 6%대 재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가 오름세로 전환한 영향이 컸다. 글로벌 채권금리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7개월 만에 4.6%대로 뛰어올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천천히 내릴 것이란 우려가 부각된 탓이다. 국내 채권시장에도 고스란히 여파가 전해졌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평균금리는 지난달 9일 연 2.889% 수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26일 연 3.149%에 도달했다.
꿈쩍 않는 가산금리도 가계대출 금리를 떠받치고 있다. 대출금리는 은행채 등 준거금리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붙이는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된다. 주요 시중은행은 가계대출이 폭증하기 시작한 지난해 7월 이후 넉 달간 가산금리를 20차례 넘게 인상하며 대출 문턱을 높여왔다. 그러다 대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새해 목표치 재설정으로 여력이 생기면서 최근 비대면 대출 창구를 열고 주담대 한도를 늘려주는 등 제한 조치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산금리 인하 소식만큼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목표치를 넘긴 은행에 불이익을 주고, 올해도 가계대출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이내로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눈치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금리를 낮추는 은행으로 ‘대출 쏠림’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 은행이 단독으로 가산금리를 내리기는 어렵고, 당국의 페널티 방안과 이에 따른 연간 대출 관리 계획이 확정돼야 협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동산 경기 둔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이 대출 수요에 미칠 영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