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파코스(백화점 고급 브랜드)로부터 환승했다." "코스파(가성비)가 좋다."
일본 최대 화장품 리뷰 플랫폼 아토코스메에 올라온 한국 브랜드 루나(LUNA)의 '칩 컨실러' 제품 리뷰다. 컨실러는 얼굴 잡티를 가려주는 화장품이다. 이 제품은 아토코스메가 2024년 9~12월 리뷰 등을 종합해 집계한 컨실러 랭킹 8위에 올랐다. 10위 안에 든 한국 브랜드는 루나뿐이다. 디올, 맥(MAC), 코스메 데코르테 등 값비싼 브랜드가 잔뜩 있는 일본 컨실러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애경산업이 루나를 일본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재팬에 입점시키며 일본에 진출한 건 2021년. 온라인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일본 화장품 유통량의 80~90%를 차지하는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전략이었다. 말처럼 쉽진 않았다. 경쟁사인 한국 인디 브랜드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알아차려 수시로 트렌디한 신제품을 내놓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바이럴(소문)을 만들어갔다. 의사 결정 단계가 많고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6개월, 2년, 3년 단위로 중장기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정한 뒤 움직이는 대기업에선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다소 느리더라도 제품력을 앞세워 충성 고객층을 조금씩 넓혀가는 수밖에 없었다.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현재 루나는 일본 오프라인 점포 6,500여 곳에 입점한 상태다. 이렇게 고객 접점이 넓어지면서 2024년 상반기(1~6월) 일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배 성장했다. 오프라인 매출 비중은 80%에 달한다. 홍영기 화장품커머셜사업부 월드와이드팀장은 "보통 이커머스에서 이름을 알린 뒤 버라이어티숍(잡화점), 화장품 편집숍에 입점하고 성과가 나오면 일본 전역에 깔린 드러그스토어(약국)에 들어간다"며 "2024년부터 드럭스토어에 루나 제품이 깔리기 시작한 만큼 올해 성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애경산업 같은 화장품 대기업에도 세계 3위 규모의 일본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다만 조직 규모가 크다 보니 일본 내 K뷰티 붐을 이끄는 인디 브랜드처럼 '될 만한' 상품을 빠르게 내놓아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먼저 차지하는 전략을 펼치긴 어렵다. 대신 이들은 자본력을 무기로 유망한 중소 브랜드를 인수·합병(M&A)하거나 인디 브랜드가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일본 럭셔리 시장을 파고들었다.
M&A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LG생활건강이다. 2012년 긴자스테파니를 시작으로 일본 화장품 업체 여러 곳을 인수하던 LG생활건강은 2023년 9월 일본 MZ세대에서 인기가 많은 국내 색조 브랜드 힌스의 모(母)회사인 비바웨이브 지분 75%를 425억 원에 사들였다. 다만 인수 이후 브랜드 정체성과 트렌디한 디자인, 독창적인 상품 기획력이라는 힌스의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독립 경영을 보장하고 있다. 힌스 관계자는 "잡화점을 중심으로 3,000여 곳에 입점해 일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갈 계획"이라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각종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며 일본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정공법' 전략을 쓰고 있다. 오프라인 화장품 구매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일본 시장의 특성을 고려했다. 이 회사는 2024년 4월 일본 3대 잡화점 중 하나인 로프트의 10개 대표 매장에서 '아모파시페스(アモパシフェス·아모레페스티벌)' 행사를 열었다.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라네즈, 이니스프리, 에뛰드, 에스트라, 프리메라 등이 총출동했다.
2023년 9월 브랜드 헤라를 일본에 선보이며 럭셔리 시장 공략에 나선 것도 특징이다. 한국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중저가 시장에서 벗어나 새 영역을 개척하고 나선 것. 헤라가 일본서 처음 팝업스토어를 마련한 곳도 샤넬, 입생로랑 등 럭셔리 브랜드가 모인 도쿄 시부야 대형 쇼핑몰 '스크램블스퀘어'였다. 회사 관계자는 "대표 제품인 블랙 쿠션이 일본 뷰티·패션 전문 유력 매체들이 발표한 쿠션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하며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