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마저 야당 주도로 가결되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는 초유의 상황이 현실화됐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증시는 바닥을, 원·달러 환율은 천장을 뚫고 있다. 내수 부진과 수출 여건 악화로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제 사령탑마저 흔들리게 되면서 대외신인도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정부는 최 권한대행이 정부조직법 26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 업무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이제 '1인 3역(대통령+국무총리+기재부 장관)'을 소화하며 경제는 물론, 외교·국방 등을 아우르게 됐다. 한 권한대행 탄핵안 국회 통과 후 최 권한대행은 합참의장과 통화하고, 외교부 장관과 국방·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에 서면지시를 내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현안에만 매달려도 모자란데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돼 대응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한국 경제 혼란은 점입가경이다. 3일 비상계엄 선포 전 1,402.9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1차 표결 불발 후 1,430원대로 올라섰다. 윤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변동성이 잦아드는 듯했던 환율은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야당이 한 권한대행 탄핵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최근 다시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날엔 장중 1,486.7원까지 치솟아 고가 기준으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6일(1,488.5원) 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문제는 백약이 무효라는 데 있다. 앞서 외환 당국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늘려 내년 말까지 1년 추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엔 △은행 선물환 한도 확대 △외화 대출 규제 완화 등 외환 수급 개선 방안도 내놓았다. 최 권한대행까지 '강력한 시장 안정 조치로 대응하겠다'는 등 구두 개입성 발언을 연이어 내놨지만 환율이 단기 1,500원 선을 넘어설 수 있단 전망에 힘이 실린다. 외화보유액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0억 달러를 밑돌 수 있단 관측이 나오는 등 더 이상 외환당국이 쓸 카드가 마땅치 않다.
증시 투자 심리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특히 정국 불안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실제 계엄 사태 직후인 4일부터 이날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3조3,590억 원을 순매도했다. 세계 증시에서 한국만 '산타 랠리' 없이 고꾸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증시 방어를 위해 기업 밸류업 참여를 독려,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를 내놓고 10조 원 규모 '증권시장 안정펀드(증안펀드)' 투입 계획을 밝히며 방어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기업 실적 개선 없인 외국인 자금 이탈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이 와중에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한국 경제는 '시계 제로(0)'가 됐다. 최 권한대행은 최근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직접 1%대 성장률을 언급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보편 관세 등 통상여건 변화가 예고되면서 경기회복세를 이끌던 수출도 장담할 수 없어졌고, 소비·투자 위축에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가 더 악화하고 있단 진단이다. 이를 고려해 최 권한대행 등 국무위원들은 이날 국회 표결에 앞서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 안보와 국민 경제, 국정 연속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 호소했지만 허사가 됐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 사유와 의결정족수 등을 두고 여야의 법리적 정당성 다툼이 이어지고 있고, 최 권한대행도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시 탄핵 대상이 된다. 기재부는 현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춘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준비 중이지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안갯속이다.
그간 정부가 최우선으로 뒀던 대외신인도 제고가 부질없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말 그대로 국가 평판의 문제"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너무 큰 상황이라 대외신인도 하락과 추가 환율 상승,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달러로 결제해 원유를 확보하는 석유·화학 산업 등은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불안감에 기업은 투자 결정을 뒤로 미루고, 국민은 지출을 줄이니 내수침체도 심화해 성장률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