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도 전례도 없다"...초유의 권한대행 탄핵에 공직사회 '우왕좌왕'

입력
2024.12.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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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의 대행' 사태 현실로
행안부 "업무 범위, 권한 규정 없어"
술렁이는 관가...'소극적 행정' 전망

한덕수 국무총리마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단 13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물러나며 초유의 행정 공백이 현실화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가 됐지만 업무 범위와 권한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는 "헌법재판소만 바라보게 생겼다"는 하소연과 함께 소극 행정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가결로 한 총리가 직무정지에 들어가며 '정부조직법'상 다음 차례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이어받았다. 정부조직법은 국가 행정기관의 설치 및 조직, 직무 범위를 정한 법이지만 권한대행 '순서'만 명시돼 있다는 게 문제다. 권한대행의 업무 범위와 권한은 헌법은 물론이고 정부 조직·기능을 다루는 행정안전부에도 매뉴얼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 부총리의 집무실 위치부터 각 부처 보고 체계, 부처 간 정책 조정 업무 등도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총리비서실, 국무조정실, 기재부가 협의해서 건건이 정해야 할 판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순서를 정했지만 업무 범위까지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권한대행의 업무에는 헌법적 해석이 많이 개입되는데, 하물며 권한대행의 대행이면 계속 헌재의 판단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업무 범위와 권한이 명확지 않아 한 총리도 대통령에 준하는 적극적인 권한을 행사하기가 어려웠는데, 한 총리의 대행인 최 부총리가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 부총리는 경제정책의 수장이지 사회·외교·안보 분야 등에서는 전문성이 떨어진다. 이에 사회 분야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가, 외교·안보는 국가안보실 또는 외교·국방부가 맡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무회의는 기재부에 담당 조직 자체가 없는 만큼 국무총리비서실이 계속 관련 업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에 공직사회는 술렁이고 있다. 중앙 부처의 과장급 공무원 A씨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업무 추진이 더딘 것이 사실"이라며 "부처 내 인사도 밀린 건지 공지조차 없이 '올스톱'되면서 승진 여부를 갈피조차 잡지 못해 개인적으로도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B씨는 "탄핵 정국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 새해 업무보고부터 걱정"이라며 "너무 예외적인 상황의 연속이라 이제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답답하다"고 말했다.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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