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 교사의 눈물

입력
2024.12.25 18:00
26면
정년 퇴임 은사를 향한 편지
평범한 서민의 선한 영향력
우리의 분노가 꿈꾸는 공생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열다섯 살 사춘기 시절. 어둡고 슬펐던 인생에 햇살 같은 따뜻함이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부재와 어려운 형편에 중학교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제 상황을 아시고 중학교 졸업 때까지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쉬는 시간에 친구와 놀다 반으로 들어와 보면 제 책상에 걸린 하얀 종이가방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열어 보지 못하고 숨 가쁘게 집으로 뛰어들어와 열어 보면 그 안에 과일과 책 그리고 종이봉투 안에 든 현금과 편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오빠랑 단둘이 살고 있던 제게 선생님이 주신 먹거리와 현금이 그달의 생활비, 버틸 수 있는 삶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선물해 주신 책과 편지는 제 인생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해 나갈 수 있는 길이 됐습니다.

저는 어릴 때 겪은 수많은 일들이 너무 힘에 겨워서 대부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는 좋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중3 때 깊은 우울로 잠을 많이 자면서 장기 결석하고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조차 가지지 못한 채 살고 있어 주변에 게으르고 철이 없는 아이로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저를 불러 학교 운동장이나 교정 계단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들어 주시고 '넌 참 글을 잘 쓴다' '넌 소질이 있다' '넌 참 착한 아이다' '참 대단하다'는 칭찬을 늘 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때 제 삶 속에서 조건 없이 받은 유일한 사랑과 칭찬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내려간 뒤에도 삶이 힘겨울 때마다, 사람들에게 지칠 때마다 그래도 인생은 따뜻하고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으로 이겨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청소년 상담사, 중학교 교육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여자중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중학교 때 저랑 비슷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일이 지칠 때마다 선생님께서 주신 사랑을 많이 생각합니다. 조건 없이 제자에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며 나도 이 아이들에게 햇살이 돼야 한다는 다짐 속에 청소년들과 14년을 함께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돼 감사함을 표할 때마다 '나도 중학교 때, 어렸을 때 받은 걸 너희에게 갚는 거야'라고 답해요. 오랜 기간 학생들을 위해 애쓰시고 가르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자들과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요."

몇 달 전 서울 한 여중 미술교사의 정년 퇴임식. 27년 전 졸업한 제자가 중학생 아들을 데려와 울먹이며 읽어 내려간 4분 분량의 편지다. 교사의 화답도 곱다. "그대는 제가 평생 그린 그 어떤 작품보다 훌륭한 작품이라오." 아내가 지인의 사연이라며 보낸 동영상을 대수롭지 않게 열었다가 코끝이 찡했다.

처단, 사살, 체제 전복 같은 살벌한 말들이 짓누르는 연말에 다시 꺼내 봤다.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권한의 정당한 도리 따위 흐릿해진 지 오래지만 작금의 불법 계엄 사태는 다시 그 권한이란 것(지위 돈 지식 힘 등)의 정도(正道)를 아리게 묻는다. 그 답은 저 스승과 제자처럼 평범한 서민이 나누며 잇는 선한 영향력에 있다.

내용을 압축하고 추가 취재한 내용으로 살을 붙이려다 접었다. 담백하고 진솔한 날것의 고백을 뛰어넘을 글재주가 없어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받아 적었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꿈꾸는 세상이 저 편지에 담긴 존중과 연대, 공생임을 믿는다. 밤이 되면 누군가는 어둠을 보고 누군가는 별빛을 본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메리 크리스마스!

고찬유 사회정책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