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여론조사가 또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조작’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 여론조사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여론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여론(輿論·public opinion)은 글자 그대로 '공중의 의견'이지만, 그 의미를 하나로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민의(民意), 민심(民心), 천심(天心) 등의 용어들이 여론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오늘날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는 여론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개인의 의견을 산술적으로 합한 것'이다.
이러한 여론 개념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반한 '다수결의 원리'를 제안한 영국 공리주의자들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이익과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개인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고안된 '다수(majority)에 의한 지배'라는 원칙 아래에서, 여론은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모아놓은 것이 됐다. 그리고 이 여론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여하튼 여론을 ‘개인 의견의 산술적 합’이라고 가정한다면, 여론조사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의 문제에 부딪힌다. 먼저, ‘개인이 가진 의견이 정확한 것인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개인의 의견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론의 정확성과 관련,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언론 철학자인 월터 리프먼은 일반 대중의 능력이 현대사회의 급변하는 문제들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어서, 공적 사안에 대한 개인 의견의 합으로서의 여론은 언론이 제공하는 이미지들, 개인들의 표피적인 인상, 편견(stereotype), 그리고 이기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걸려 오는 여론조사 전화와 관련, 질문하는 사안이나 정치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의견을 표명하는지, 또 얼마나 성실하게 답변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여론을 제일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기에는 비용과 노력과 시간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론조사는 전체 집단에서 일정한 표본(sample)을 추출하여 조사한 이후에 이것을 전체 집단으로 추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여론조사는 전체의 일부분만을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집단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기는 어렵다. 특히 선거에 나서는 두 후보자에 대한 지지 비율이 비슷한 경우에는 선거 여론조사를 정교하게 실시했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오차의 범위 안에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선거 여론조사가 오남용되거나 조작의 유혹이 생기는 것도 후보자가 서로 난립하거나 후보자 간의 지지율이 박빙일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선거 여론조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짧은 시간에 유권자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개인에게는 타인의 의견을 파악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정당에는 유권자의 흐름을 이해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선거 여론조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고용으로 활용하기에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지만,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거나 정당에서 후보자 공천의 근거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선거 여론조사의 활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