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계엄 사태의 배후로 국군정보사령부가 지목되면서 그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현역이 아닌 예비역들이 더 활개를 쳤다는 점에서 "우리는 특수조직"이라는 자부심이 오히려 계엄의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특수부대인 정보사는 어쩌다 계엄의 불쏘시개로 전락한 것일까.
23일 야권과 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계엄 사태의 '비선 핵심'으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육사 41기)과 김용군 전 대령은 모두 '불명예 전역자'다. 그럼에도 문상호 정보사령관(육사 50기)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을 쥐락펴락하며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신임을 등에 업고 진급 등을 미끼로 현역 장성들을 포섭한 것이다. 이들은 노 전 사령관의 거처인 경기 안산의 점집 인근으로 찾아가 계엄에 동조했고 '판교 사무실'의 책임자인 군 간부는 이 같은 비선 조직의 위세에 막혀 출입을 통제당하며 맥을 못 췄다.
민간인에 불과한 'OB(old boy)'들이 이처럼 실세로 군림했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을 주도한 노 전 사령관은 육군정보학교장이던 2018년 교육생 신분의 부하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김 전 대령은 과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사건 수사과정에서 처벌받은 전력으로 군복을 벗는 창피를 당했지만 아랑곳없었다.
OB들을 깍듯이 예우하는 정보사 특유의 그릇된 풍토가 원인으로 꼽힌다. 정보사는 임무 특성상 ①옆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고도의 보안 속에 ②불법 정보수집 활동이 묵인되는 곳이다. 그에 따라 ③축적된 정보 자산으로 개개인이 권력화하면서 전역 후에도 인맥과 정보력을 통해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논란이 된 문 사령관에 대한 A여단장의 하극상은 단적인 사례다. A여단장이 정보사 OB들에 안가(安家) 등을 제공하며 예우하자 문 사령관은 이를 문제 삼았다. 이에 정보사 OB들은 문 사령관을 인정하지 않으며 A여단장의 든든한 지원 세력을 자처했다는 게 전직 정보사 고위 간부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군 내부의 위계질서보다 뒤를 받쳐줄 예비역 선배들과의 끈끈함이 더 중요한 조직인 셈이다.
문 사령관도 구태를 반복하긴 마찬가지였다. ‘OB 예우 척결’을 강조했지만 이번 계엄과정에서 노 전 사령관의 손을 잡았다가 내란 사태 핵심 인물로 지목돼 구속됐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문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전날인 2일에도 정보본부와 정보사 출신 장성 모임인 국방정우회 회원 30여 명이 참석한 ‘정보발전협의회’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방정보본부가 약 5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한 이날 행사가 ‘사령관 문상호’에게 주어진 ‘최후의 만찬’이 된 셈이다. 정우회 회원이 아닌 노 전 사령관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앞서 하극상 사건을 계기로 정보사 조직 전반에 대한 인적 쇄신과 강도 높은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하지만 반년 가까이 미루다 이번 사태를 맞았다. 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정보사 전체 조직 혁신 차원의 발전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 다각적으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핵심은 인사”라고 지적하면서 “아무리 비밀스러운 조직이더라도 현역들만의 힘으로 역량을 키워가며 경쟁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OB 차원의 자문을 투명하게 제도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