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비상 상황 시 반도체·배터리 등 중요 물자를 공급하는 민간 기업의 제조 공장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3일 보도했다. 국민 생활에 없어선 안 되면서도 외국 의존도가 높은 물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급이 정체되면 사회·경제적 여파가 큰 중요 물자 12개에 대해 기업 동의를 얻은 뒤 일시적으로 해당 물품 생산 공장을 인수하는 방안을 새 제도의 초안으로 마련했다. 오는 24일 열리는 전문가 회의에서 이를 제시해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정한 비상 상황은 △감염병 확산에 따른 수요 급증 △원자재 수입 중단 △해외 기술 유출 위험 등 크게 세 가지다. 긴급한 상황에 정부가 직접 나서 중요 물자 생산 능력을 유지하고 기술 유출도 막겠다는 취지다.
일본은 이미 2022년 시행한 경제안보추진법을 통해 △반도체 △첨단 전자부품 △배터리 △공작기계 및 산업용 로봇 △항공기 부품 등 12개 물자를 '특정 중요 물자'로 지정해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이 법에는 국가의 관련 기업 인수 등 공급망 관리의 구체적 방안이 담겨 있지 않다.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이를 보완하려는 게 일본 정부 구상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나 첨단기술 제품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희소금속 수출을 중국이 규제해 원자재 수입이 어려워지면 일본 기업의 생산 능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경영난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설비를 처분할 경우, 일시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다 해도 공급망 유지가 매우 힘들어진다.
새 제도가 초안대로 시행돼 정부 개입이 이뤄지면 생산 능력 유지는 물론 수요에 맞춰 유연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요미우리는 "기업은 미래 수요를 보며 설비 투자에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정부가 소유할 경우 생산력 증대를 위해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일본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초안에 '공급망 개입 강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최대한) 억제한 뒤 발동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