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시장 규탄한다! 박정희 동상 치워라!"
"박정희를 비난할 거면 고속도로도 쓰지마!"
23일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설치된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을 경찰 400여 명이 에워쌌다. 동상 설치 찬반 단체들과 유튜버, 시민들이 대립한 광장에는 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반대 측은 '홍준표 시장 규탄'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항의했고, 홍 시장이 나타나자 인파가 몰리며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성모(40)씨는 "비상계엄 여파로 불안한 정서가 지역사회로 번지면서 대구 여론도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논란 끝에 박정희 동상이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졌다. 홍 시장이 추진하는 국채보상운동, 2·28민주화운동 등 '대구 3대 정신 살리기 사업'의 마침표다. 그러나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맞물려 지역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동상 설치 반대 목소리도 쏟아진다. 보수 여론의 중심인 대구 민심이 박정희 동상 때문에 갈라지는 양상이다.
대구시는 이날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과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을 비롯해 새마을 단체 회원 등 2,000여 명이 참여했다.
3m 높이의 박정희 동상은 밀짚모자를 쓰고 볏단을 든 모습이다. '보릿고개 넘어온 길, 자나 깨나 농민 생각', '재임 18년 동안 모내기, 벼베기를 한 해도 거르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대구시는 지난 5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6억 원을 투입해 동상을 제작했다. 8월에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폭 0.8m에 높이 5m 크기 표지판을 설치했다. 향후 대구 남구에 조성되는 '대구대표도서관'에도 6m 높이 박정희 동상을 건립할 예정이다.
홍 시장은 "역사적 인물의 공이 있다면 기려야 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며 "박 대통령의 애민과 혁신 리더십이 빚어낸 산업화 정신을 계승해야 선진대국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마음이 모두 홍 시장 같지는 않았다.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는 이날 대구시청 산격청사와 동대구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계엄의 원조 박 대통령은 대구의 수많은 민주열사를 탄압한 전례가 있다"며 "만약 김일성이 경제를 살렸다고 해서 그 사람을 우상이라 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지역 정치권도 비판 행렬에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박정희 동상은 대구의 다양성을 짓밟는 동시에 헌법과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선동하는 것"이라며 "대권 놀음에 역사적 논란이 끝나지 않은 박정희를 불러내 되려 박정희를 욕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도 "동대구역은 대구시민과 전국 국민에게 열린 공공의 광장으로 독재자 동상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라며 "대구시만 치욕의 도시로 기억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법적 공방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동상 설치는) 부적절하고 동의하지 않는다"며 "법률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해 국가철도공단 이사장 역시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아직 관리권이 대구시에 완전히 이관되지 않은 만큼 적절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국가철도공단은 지난 13일 대구지법에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대구시가 동상 설치를 강행할 경우 위반 행위 1일당 500만 원을 부과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홍 시장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안동 경북도청의 8m 박정희 동상에는 아무런 시비를 걸지 못하다 유독 대구 박정희 동상에는 온갖 트집을 잡고 있다"며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반대 여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