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가 '크리스마스 악몽'에 빠졌다. 성탄절을 불과 닷새 앞둔 20일 저녁(현지시간), 동부 작센안할트주(州) 주도인 마그데부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차량 돌진 테러'로 5명이 숨지고 200명 넘게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망자 중에는 9세 어린이도 있었다.
범인은 반(反)이슬람주의 성향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이민자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민자 혐오' 정서를 자극해 온 극우 정당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독일의 이민 정책 자체를 둘러싼 논란도 불붙고 있다.
21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마그데부르크 검찰은 전날 일어난 차량 돌진 테러 사건의 용의자 탈레브 알 압둘모센(50)을 살인·살인미수 등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사우디 출신으로 2006년부터 독일에 거주한 그는 마그데부르크로부터 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베른부르크에서 정신심리 치료 전문의로 일하던 인물이다.
압둘모센은 20일 오후 7시 4분 검은색 BMW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몰고 마그데부르크 중심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향해 돌진했다. 차량이 약 400m를 내달린 결과, 9세 여아를 포함해 총 5명이 사망했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중상자도 4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희생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압둘모센은 범행 장소 주변 트램 정류소에서 체포됐다.
마그데부르크는 비통한 분위기다. 사건 현장 인근 교회는 테러 발생 24시간이 지난 21일 오후 7시 4분에 맞춰 종을 울리며 희생자들을 애도했고, 교회 앞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인형 등이 수북하게 쌓였다. 테러 현장을 찾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가장 평화롭고 즐거운 공간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보안 강화에 나섰다. 베를린, 함부르크 등 주요 도시는 크리스마스 마켓 배치 경찰을 크게 늘렸거나 증원을 결정했고, 경찰연맹(GdP) 등은 공공장소에서 무인기(드론)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한 감시 강화를 장기적 조치로 요구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겨냥한 테러는 2016년 12월 베를린에서 발생한 후 8년 만이다.
이번 테러는 이민 정책을 둘러싼 독일 내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용의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슬람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과 공격적 성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다. 압둘모센의 엑스(X) 계정에는 "독일이 유럽을 이슬람화하고 있다" "독일 경찰이 반이슬람 활동을 파괴하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낸시 페저 내무장관은 "범인이 이슬람혐오주의자라는 사실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이민 정책 시행 과정에서 국민적 반감 등 부작용을 방치한 결과라는 여론도 적지 않다. 검찰은 "용의자는 사우디 출신 난민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압둘모센이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열혈 지지자라는 점에서,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며 세력을 키운 AfD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앨리스 바이델 AfD 대표는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에서 "이 광기는 언제 끝날까?"라며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테러 사건은 이민 문제와 AfD의 지지세 확대로 인해 곤경에 처한 독일의 정치적 긴장을 반영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