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거나 고여 있지 않은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추방된 자'가 되려는 사람. 세계적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경력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발레리나 김주원(47)은 "파도처럼 잘 흘러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삶 자체인 발레에 대해서는 "조용하게 미친 자들이 뼈가 자라기 전부터 모든 것을 쏟아부어 몸을 바꿔 가며 만드는 예술"이라고 적었다.
2000년대 '한국 발레 르네상스' 주역 중 한 명인 스타 발레리나 김주원이 '작가' 이력을 추가했다. 무용수에서 예술감독으로 보폭을 넓히고 뮤지컬,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도 활약해 온 그는 지난달 첫 에세이 '나와 마주하는 일'을 출간했다. 한계를 마주하며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련의 파고를 넘어 온 발레 인생 35년을 덤덤하게 털어놓은 책이다.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주원은 "내 부족함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아픔까지 사랑하면서 진짜 내 춤을 추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거짓은 담고 싶지 않아 조사 하나까지 고민하다 보니 3년 만에 탈고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책을 통해 발레의 기본인 '턴아웃(무릎과 발끝이 바깥쪽을 보도록 외회전)'조차 쉽지 않은 체형이며, 최고가 아니었기에 곁에 있던 뛰어난 친구들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았노라고 고백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김주원은 어려서부터 고여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책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을 가고 싶어 부모님 허락도 없이 학교에 자퇴서를 낸 중학생 시절 일화가 담겼다. 당시 그는 발레를 하는 이유를 묻는 볼쇼이 발레학교 선생님에게 "춤을 출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주원은 "선천적으로 감각이 예민하고 강박 증상이 있었는데 발레를 할 때만 무뎌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주원은 2012년 '포이즈'를 마지막으로 19세 때부터 활동한 국립발레단을 떠났다. '자발적 추방'을 택한 주된 이유는 자유로운 도전을 위해서였다. 늘 새로운 꿈을 꿨던 김주원은 때로는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2007년 패션지에 상반신을 드러낸 사진을 공개한 일이 대표적이다. 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는 사진 작가의 취지에 따라 다양한 분야 인사가 참여한 프로젝트였지만 국립단체 소속인 그의 사진에 유독 관심이 쏠렸다. 그는 "내 확신이 있어 질타의 목소리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지만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안정된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 이름만으로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퇴단 배경을 설명했다.
국립발레단에서 나온 후 그는 성신여대 무용과 교수로 후학을 길렀고, 뮤지컬·연극 무대에 섰다.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위촉돼 '2024 부산발레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내년부터 3년간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으로 축제를 이끈다. 엠넷의 무용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엔 심사위원인 '마스터'로 등장했다. 그는 무용수로 무대에 서기보다 연출과 기획을 겸하는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시간이 늘면서 "내 춤을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는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요즘 새삼 느낀다"고 했다.
더 나아가 지금 김주원의 꿈은 세상 모두가 예술을 통해 꿈을 꾸는 것이다. 그는 '모든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통해 인생은 살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 내 이야기만 하는 이 시대에 예술이 갈등의 완충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은 스스로를 마주하게 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마주하게 해요. 제가 책으로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을 지닌 이들의 공감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