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군사법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각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고, 각하를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의 최후진술은 인정되지 않았다. 10·26 사태 직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김재규에 대해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고 이듬해 그의 사형을 집행했다. 민주화라는 대의를 주장하며 최고 권력에게 총구를 겨눈 김재규는 군부에 정권을 넘겨준 역사의 반역자로 각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10·26 사태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10·26 사태를 일으킨 김재규는 내란을 꿈꾼 암살범인가, 독재자를 처단한 의사인가. 김재규에 대한 엇갈린 평가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책 ‘피고인 김재규’는 이에 대한 가장 실증적인 답을 내놓는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싸운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인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10·26 사태와 관련한 방대한 분량의 군사재판 기록을 가감없이 정리했다. 10회에 걸친 군사법원 1심 공판과 4회에 걸친 2심 공판 전 과정을 담았다. 공판 과정에서 나오는 김재규의 생생한 진술을 통해 10·26 사태 전모를 유추해볼 수 있는 기회다. 저자는 김재규에 대한 평가를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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