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과 다시 만난 세계

입력
2024.12.21 04:30
19면

12월 14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수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많은 시민들이 ‘이번만큼 국회가 일을 잘 해낸 적이 없었다’며 응원과 격려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사실 지금껏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만큼 뼈저리게 실감한 적은 없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두 번째 표결이 있던 지난 14일, 수백만 명의 인파가 영하의 추위 속에서 국회 본회의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서울 거리로 나가 응원봉을 들고 K팝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한국인들은 나라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각자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이번 시위에서 들고나온 것은 아이돌 응원봉이었다. 딱 8년 만이다. 양초 대신 응원봉을 든 10대와 20대가 가득했고, 거리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흥이 있었지만,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우리나라를 더 이상 망가뜨리게 두고 볼 수는 없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내란의 밤, 그날 이후부터 12월 14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의 밤까지, 11일 동안 국회는 비상이었다. 언제든 제2의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의원들은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밤낮없이 24시간 동안 국회의 모든 출입구를 지켜주셨던 시민들이 계셨다. 또한 국회를 침탈한 계엄군 병사들도 총칼로 무장을 했지만, 끝내 국민을 해치지 않으려 했던 망설임이 있었다. 이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일 것이다. 그들이 배워온 민주의식이 그들의 총칼에 망설임과 주저함이 되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을 구했다. 시민들이 국회를 침탈하는 계엄군의 총부리를 막아서고, 민주주의의 길목을 지켜주셨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경찰들의 바리케이드를 막아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싸워 주셨다. 나도 국회 출입구에서 경찰에 막혔으나, 시민들이 경찰들을 설득해서 간신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놀라워했던 여러 지점들이 있다. 첫째, 우리 국민이 비상계엄을 고작 15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해제할 수 있었던 것, 둘째, 계엄 해제 이후 11일 만에 내란 수괴 윤석열을 탄핵소추 의결한 것, 셋째, 우리의 집회가 놀라울 정도로 즐겁고 흥겨운 콘서트 장처럼 밝은 분위기였다는 것, 집회 이후에 거리에 쓰레기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높다는 것이었다.

내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국민 여러분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빛이 되어, 소중한 것을 지키려 거리로 나온 것이다. 가장 소중한 빛은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존중하는, 평화와 사랑과 연대의 빛,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 된 빛이었다. K팝의 합창으로 세대와 성별과 계층을 뛰어넘어 연대해서 승리한 경험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헌정 질서가 위태로울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국헌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항상 국민들이었다. 우리 국민들과 함께 ‘다시 만난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