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 계엄 사태’ 여파로 한동안 파행하던 한미 외교가 다시 정상궤도에 복귀하는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 2인자가 고위급 회동 재개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한국의 과도정부가 얼마간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외신센터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언론을 상대로 라운드테이블 형식 간담회를 열고 “우리는 고위급 대화를 계획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적절한 시기에 한국 정부와 대면 대화를 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한 차례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을 거치며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한때 혼란에 빠졌던 한국과의 외교를 다시 정상화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계엄령 이튿날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연습을 곧바로 연기한 데 이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 계획도 철회한 바 있다.
미국의 전향 계기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절차 개시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과도 체제의 안착이다.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캠벨 부장관은 “우리는 한국이 취해 온 헌법적 조치를 지지해 오며, 이 어려운 시기를 한국이 잘 헤쳐 나갈 것이라는 신뢰를 표명해 왔다”고 말했다. 앞서 캠벨 부장관은 비상계엄 직후인 4일 '심각한 오판'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던 인사다.
그는 한 대행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한국 정부에서 재직한 경험이 있고 주미대사(2009~2012년)를 지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언급한 뒤 “우리는 그의 과도적 역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깊은 (한미 간) 관여(접촉)의 신호를 계속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정쩡한 상태를 계속 방치하면 미국도 손해다. 중국 견제라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동맹국이다. 더욱이 한국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이든 행정부의 유산인 한미일 3국 협력이 유지되도록 단속하려면 정부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까지 두루 접촉하며 관리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캠벨 부장관이 “과도정부뿐 아니라 위기의 다른 행위자들과도 가능한 모든 소통 채널을 열어 두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미 외교에서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도 별 수 없으리라는 게 캠벨 부장관의 전망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는) 계속 북한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 강화로 상황이 변했다”며 “그(트럼프)가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추구했던 방식의 외교가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무급 회담을 건너뛰고 정상 간 유대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트럼프식 ‘톱다운 외교’가 다시 통할지 의문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