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창원 LG의 2년 차 가드 유기상(23)이 인기 판도를 바꿨다. 최근 3년 연속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지켰던 ‘허웅(부산 KCC) 천하’를 끝내고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LG 구단 소속 선수로는 최초의 최다 득표다.
올스타 팬 투표가 끝난 16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유기상은 “처음 1위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차피 곧 따라잡히겠지’라는 생각에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진다더라. 당시 팀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도 팬들이 기를 살려주려고 표를 조금 더 밀어 주신 것 같아 감사함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시즌 LG에 입단해 신인상을 받은 유기상은 데뷔 2시즌째 8만1,078표를 얻어 고양 소노 이정현(7만6,915표), 부산 KCC 허웅(7만5,071표)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쳤다. 프로 2년 차에 팬 투표 1위 영예를 안은 건 김선형(서울 SK), 허웅(당시 원주 DB), 양홍석(당시 부산 KT)에 이어 네 번째다. 유기상이 팬 투표 1위로 나서는 올스타전은 내년 1월 19일 부산에서 열린다.
유기상은 “2년 차에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며 “지난 시즌엔 신인이 경기를 뛰니까 ‘오냐 오냐’ 이런 식으로 좋아해줬다. 이번 시즌엔 기존 선배들이 팀을 많이 떠나면서 LG 팬들의 사랑이 나한테 넘어온 게 아닌가 싶다”고 자세를 낮췄다.
농구 팬들 사이에서 가수 겸 배우 서인국 닮은꼴로 유명한 것도 인기에 한몫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외모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라며 쑥스럽게 웃은 뒤 “모든 선수들이 그렇듯 코트에서 열정적이고, 이기기 위해 진심을 다해 뛰는 것을 좋게 봐주시지 않았을까”라고 답했다.
농구계에선 그간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허웅이 비시즌 개인사 논란으로 큰 실망을 안긴 만큼 ‘바른 이미지’의 유기상에게 표가 몰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별한 개인 취미가 없는 유기상은 평소에 집과 체육관만 오간다. LG 구단 관계자는 “수도권 원정 경기 후 다음 홈 경기까지 일정이 여유가 있어 휴가를 줘도 수도권에 남아 있지 않고 ‘창원 집에 가서 쉬겠다’면서 바로 내려간다”고 전했다.
데뷔 시즌 신인 최다 3점슛 신기록(95개)을 쓰면서 두각을 나타낸 유기상은 두 번째 시즌도 멈추지 않고 성장 중이다. 16일 현재 지난 시즌 출전 시간이 평균 23분 34초였지만 이번 시즌 31분 2초로 늘었고, 평균 득점도 8.1점에서 9.7점으로 상승했다. 다만 3점슛 성공률은 42.4%에서 34.0%로 하락했다.
유기상은 “첫 시즌 땐 상대 견제가 덜해 좋은 찬스에서 안정적으로 슛을 던져 농구가 사실 크게 어렵지 않았다”며 “이번 시즌엔 견제도 들어오는 게 달라졌고, 수비를 달고 쏘는 슛이 많아 성공률이 떨어졌다. 결국 개인 능력 부족”이라고 자책했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3&D 플레이어(3점슛과 수비가 탁월한 선수)’인 유기상은 대표팀에서도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 7월 일본과 두 차례 평가전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2차전에 3점슛 5개 포함 17점을 몰아쳤다. 이에 팬들은 유기상의 영어 이름(Yu Ki Sang) ‘유키’가 일본어로 눈(雪)을 뜻한다는 것에 착안해 ‘눈꽃 슈터’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유기상은 “과하지도 않고, 딱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며 흡족해했다.
다만 아시안게임 정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아버지 유영동 NH농협은행 감독과 진천선수촌 생활을 함께 못 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유기상은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유 감독은 지난해까지 여자 정구 대표팀을 지도해 시기가 안 맞았다. 유기상은 “아버지가 같이 선수촌에 들어가 있는 게 소원이라 하셨는데, 아쉽더라. 아버지는 종목에서 정점을 찍으셨던 분이라 항상 우러러보고 있다”며 대를 이어 아시안게임 메달을 걸겠다는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