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혼돈에 정상외교 '올스톱'...그사이 지방외교 '수도꼭지' 튼 지자체들

입력
2024.1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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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중앙-지방 국제교류협의회 개최
"지역의 활력 지방외교...국가외교 보조도"
고도화된 다층·협력적 네트워크 구축해야
국제교류 유공자 포상 신설..."더 지원할 것"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대통령 탄핵 사태로 정상외교를 비롯한 국가외교가 사실상 멈춘 가운데 중앙-지방 국제교류 정책협의회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렸다. 중앙정치의 격동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지자체들의 국제 교류·협력(지방외교)의 가치를 재확인한 행사 참석자들은 지역 성장을 위한 전략뿐만 아니라 국가외교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 지방외교를 키우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협의회는 국제교류 우수 사례와 협력 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논하는 장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방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7년부터 열고 있다.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1~3회 열렸다. 10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지난 12일부터 2일간 행안부와 17개 시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일본지자체국제화협회(CLAIR), 한국동북아학회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지방외교,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

조영진 행안부 지방행정국장은 개회사에서 "단순 교류, 친목 도모 수준의 국제교류가 지금은 투자, 수출, 관광, 노동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했다"며 "지방외교가 지자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외교가 작동하기 애매한 영역과 순간에 이 같은 성과를 올려 더욱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시도지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238개 지자체는 91개국 1,386개 지자체와 1,875건의 교류 및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지자체 국제교류·협력 지원 제도화 방안' 정책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한 김수동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각국이 지역의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국제교류, 협력 등의 지방외교를 주요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며 "우리 지자체의 국제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 국제기구 간 연계를 통한 다층적, 협력적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고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각 시도 담당자들은 그간의 현장 경험을 공유하며 제안을 쏟아냈다. 해외 7개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고 밝힌 송병훈 충남도 투자통상기획팀장은 "지난해 12억1,000억 원을 기록한 충남도 수출이 올해는 9월 말 기준 6배인 73억4,000만 원에 달했다"며 "통상지원사무소의 이름을 해외사무소로 변경해 통상 외에도 문화, 관광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라고 밝혔다.

정부 지원과 ‘세밀한’ 접근 필요

김정 전북도 외국인국제정책과장은 "지자체의 국제교류 관련 제도 미비로 추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중앙정부가 명확한 제도적 틀을 잡아 지방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안부, 외교부 등이 추진하고 있는 가칭 지방외교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또 "계엄 등 국내 정치 사정으로 예정됐던 해외 일정에 오세훈 시장이 못 나간 것은 있지만, 그 외 해외 도시와의 국제교류 사업은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이준학 서울시 국제협력정책팀장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아도 예산이 부족해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중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산과 함께 지자체에 넘기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 중인 김형진 시도협의회 프랑스사무소 전문위원도 화상전화로 참석해 관련 노하우를 공유했다. 지난 9월 프랑스 쉬이프시와 협력을 약속한 경기 양평군을 예로 든 그는 "쉬이프시는 독립운동가 홍재하 지사가 1차 대전 후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에 정착한 첫 도시이고, 홍 지사의 본적이 경기도 양평군이었던 데 착안한 전진선 양평군수가 홍 지사 봉환식에 참여하면서 두 도시의 인연이 시작됐다"며 "전쟁의 아픔을 가진 도시, 군사적 요충지 같은 공통점 발굴 등 섬세한 접근을 통해 결속을 강화한 예"라고 말했다.

작은 교류…동파 방지 '수도꼭지'

김 전문위원은 특히 호국, 보훈, 평화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는 유효기간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함께 역사를 기억하면서 벌이는 다방면의 교류 사업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준혁 행안부 자치행정과장은 "국제교류의 인풋(투자)만 있고, 아웃풋(실적)은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지자체들이 보이는 성과는 놀라운 수준"이라며 "교류가 축적되고, 신뢰가 구축된다면 중앙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지자체들이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제교류·협력 유공자 포상을 올해 신설, 이날 10명에 대해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지방외교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웃 나라 대선 결과에 국가 경제와 외교 정책이 춤을 추는 시대인 만큼 그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 분산 수단으로 각국이 지방외교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수 한국동북아학회장(단국대 행정학과 교수)은 "국가외교 하위의 그 어떤 주체보다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교류를 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바로 지방정부"라며 "정부에 따라 바뀌는 대북, 한중, 한일 외교 정책 와중에도 우리 지자체들의 국제교류는 한겨울에 살짝 틀어 놓으면 동파를 막는 수도꼭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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