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막대한 선거 비용이 드는 지방 선거를 없애자’는 대통령의 제안을 두고 시끄럽다. 시민사회 단체와 야당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반면, 정부와 여당에선 지지 의사를 내비치고 있어 논란이 연일 확산하는 모습이다.
자카르타포스트에 따르면 골카르당과 국민각성당 등 인도네시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당 연합은 15일 지방 선거를 현행 직접선거에서 간접선거로 바꾸자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자질룰 파와이드 국민각성당 부의장은 “이제는 고비용 정치 시스템을 고칠 때”라고 환영했다.
이는 지난 13일 골카르당 창당 60주년 기념식에서 나온 프라보워 대통령 발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당시 프라보워 대통령은 “비용 절감을 위해 주지사와 시장 등 지방정부 대표를 주민 직접선거가 아니라 지방 의회가 임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립정부는 대통령이 속한 그린드라당을 비롯해 7개 정당으로 이뤄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과 주지사·시장 등을 선출하는 지방 선거, 이렇게 두 가지 전국 단위 선거가 진행된다. 2004년 첫 대통령 직선제가, 2005년에는 지자체장 직접 투표가 각각 도입됐는데 결국 프라보워 대통령의 제안은 다시 선거 방식을 과거로 돌리자는 얘기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1, 2일간 진행되는 투표 과정에 수백조 루피아(수십조 원)가 든다”며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처럼 지방의원이 지방정부 수장을 뽑게 되면 막대한 선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절약한 자금을 아동 급식이나 학교 개보수, 농민을 위한 관개 시스템 구축 등 더 시급한 곳에 분배하면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정부는 대통령 제안 검토에 나섰다. 안디 아그타스 법무장관은 안타라통신에 “민주적 선거가 곧 직접선거는 아니다. 고려할 만한 좋은 담론”이라며 “(간접선거 관련) 심층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어렵게 구축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원내 야당인 투쟁민주당 데디 시토루스 의장은 “당은 ‘국민의 목소리는 신성하다’는 믿음을 고수할 것”이라며 “직접선거가 민주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싱크탱크 국가연구혁신기관의 퍼르만 누르 정치연구원은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고, 정부의 임무는 민주주의를 침식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지자체장 직선제 폐지는 독재 정권으로의 회귀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선거를 없애자는 프라보워 대통령 발언은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를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했다. 그의 전 사위인 프라보워 대통령은 수하르토 정부에서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파푸아와 동티모르에서 반정부 세력을 강경 진압하고 민주화 운동가를 납치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