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관리하게 됐다. 윤 대통령은 내란 혐의로 구속되어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 심판에 회부되고 동시에 내란죄로 구속 기소되는 세계 역사상 드문 모습이 2024년 말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어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나마 사태가 수습의 길을 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윤석열 사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진보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내고 또 보수 정당이라는 국민의힘에 대통령 후보로 영입되어 대통령이 됐는가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정당이 지금과 같은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한다면 제2, 제3의 윤석열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우리 헌법제도가 극도로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민주화를 이룩한 김영삼 김대중 두 거목(巨木)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1987년 헌법은 그런 지도자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 걸맞지 않음에도 우리는 이를 방치해 와서 오늘날 이런 사태를 초래하는 데 기여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야당이 지배하는 의회가 대립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견제와 균형'을 기초로 하는 대통령제가 우리 토양에서 독주와 대결, 그리고 파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초래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제로 인해 실패한 정권을 제때 교체하지 못하고 국정을 악화시켜 왔다는 엄연한 사실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과 대통령제가 야기하는 문제는 해묵은 논쟁거리이지만 이런 논의가 일어날 즈음에는 다음 대선이 도둑처럼 닥쳐와서 결국 똑같이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윤석열 사태를 야기한 배경에 대한 성찰과 별도로 당장은 탄핵과 대선으로 이어질 향후 3~4개월 동안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 경제부총리와 외교장관은 윤석열 내란과 무관함이 밝혀졌기 때문에 두 사람이 중심을 잡고 우리 경제와 외교를 차질 없이 이끌어가야 한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조직은 군이다.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1986년 필리핀의 위기상황에서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가 국민 편에 서서 마르코스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음을 생각하면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권한대행 체제가 시급하게 대처해야 할 문제는 의대 입시와 의료 정상화다.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밀어붙인 의대 2,000명 증원은 근거도 없거니와 시행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관계 장관과 수석비서관은 의료계에 심각한 모욕을 가했다. 이에 반발해서 전공의들이 사직을 하고 의대생들은 휴학을 했으며, 대학병원들은 파행적 운영을 해왔고 의대생들은 전원 유급을 하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거부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냈고 2025년 의대 입시가 진행 중에 있다.
정부가 긴급하게 나서서 2025년 의대 입시를 중단하거나 입학생 숫자를 대폭 줄이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의대 재학생들은 복학을 거부하고 전공의들도 복귀하지 않을 것이며 신입생 4,500명 역시 전원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의 의료는 회복할 수 없게 손상될 것이기에 권한대행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해서 이 문제를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본다.